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석 Mar 31. 2016

우리는 모두 미생일까

하루 앞으로 다가온 발령 일자


치열한 경쟁을 함께 한 취업준비생들 200명이 동기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입행하기 위해 은행권에 수 차례 도전한 동기부터 언어를 새로 배우거나, 여러 자격증을 취득한 동기까지 다들 묵직한 사연을 품고 있었다. 이제 성별이나 나이는 물론, 전공과 지역조차 각기 다른 청년들이 11주 간 한솥밥을 먹으면서 은행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된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신입직원 연수는 기업문화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은행원으로 길러내기 위한 실질적인 지식 교육과 더불어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신입직원들을 하나로 묶어줄 기업문화를 심어주는 시간이 바로 신입직원 연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문화는 그 기업에 몸 담고 있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회사와 장기적인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지향하는 바가 유사해야 하고, 그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해 건전한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그러하였고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를 들으미는 경우가 많다. 기업문화를 따질 틈조차 없다. 당장 내 눈 앞에 취업이 우선 아니겠는가. 다만,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지원할 뿐이다. 또 곰곰히 생각해보면 기업문화는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 기업이 어떠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보다는 나와 그 기업문화가 어울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겪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것이다.

연수원에서 접했던 기업문화는 은행의 비전과 가치, 지향점 등에 관한 것이었다. 연수원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 동안 은행이 걸어왔던 발자취와 은행원들의 노고, 그리고 그 노고 속에서 만들어진 은행문화를 설명하면서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길 바랐을 것이다.

연수원의 교육만으로는 기업문화를 실감하기 어려웠다. 실감하기에는 연수원 교육이 너무나도 피상적이고 이상적이며, 긍정적이고 추상적이었다. 당시 드라마 <미생>이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동기들 모두 임시완에 빙의되어 미생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좌절하고 있을 때였다.

다행히 장그래보다 나은 점은 있었다. 우리는 그나마 정규직이었다. 

그렇게 은행문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안은 채 발령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머쥔 합격, 그리고 빼앗긴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