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청포도 캔음료
"이상석, 중화역 지점 5급 수습행원으로 명함!!"
본사에서 발령을 받고 해당 영업점에 전화를 한 뒤 간단하게 인사를 하기 위해 영업점으로 갔다. 지하철 타는 내내 속으로 '마실 거라도 사야 하나.. 목소리는 어떻게 하지? 웃으면서 인사해야 하나? 웃으면 혼내려나? 정색할까?' 세상 모든 걱정을 떠안고 나라 잃은 표정으로 영업점 앞에 섰다. 역전 사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보니, 내점 고객이 많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으로 벨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중화역 지점 발령받은 신입행원 이상석이..ㅂ..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아!?"
소개도 채 끝나기 전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군대에서 조교까지 했던 나에게 목소리가 작다며 불같이 화를 낸 사람은 15년 차 차장이었다.
지옥문이 열렸다.
종합상담창구에 앉아 고객을 응대했다. 간단한 입출금통장 신규부터 까다로운 주택담보대출, 펀드와 방카슈랑스까지 담당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업무를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고객과 대면 업무를 해야 하는 은행업무는 절반 이상이 감정 노동이다. 지상 최대의 '을'을 경험하면서 다시 한 번 미생임을 느꼈다.
감정 노동은 회식자리까지 연장된다. 술 잔을 들고 뛰어다니며 술을 받아 마셔야 했고 2차 장소, 3차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음 장소로 먼저 이동하기도 했다.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7시까지 출근해서 영업 준비를 해야 한다.
헛깨수를 사오지 않았다고 혼이 났다.
고객을 받다가 구역질이 나지는 않을까.
옆 지점 동기는 지점장 구두에 토했다는데.
하루는 70대 할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총각이 내 앞으로 왔다. 어머니 예적금을 가입하려는 손님인가보다 하고 상담을 시작하는데,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침울하다.
"고객님,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
"내가 다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쪽에서 XX은행 계좌번호를 만들어 오라는데.."
화들짝 놀랐다. 70대 할머니의 급여통장. 옆에 있던 아들은 눈가가 촉촉해진 채 사업 실패로 부득이하게 어머니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업점 생활을 하면서 개개인의 경제 사정이 얼마나 다양한 지 알게 되었고, 우리 사회의 그늘 진 곳이 얼마나 많은 지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아주 슬픈 날이었다.
그 때 그 신입직원이신 74세의 할머니,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슬픈 날만 있지는 않다. 블랙 컨슈머로 화나는 날도 있지만, 흐뭇한 날도 간혹 존재한다. 매년 아들이 예적금 관리를 해주던 할머니께서 올해는 아들이 장기간 해외출장을 가는 바람에 손녀와 함께 직접 내점하셨다. 그런데, 예금이 만기되었을 때 이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모르셨나보다. 손녀와 외식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할머니.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고 자리를 뜨셨다.
몇 분 뒤, 낯익은 손녀가 내 창구 앞으로 뛰어 오더니 청포도 캔음료를 놓고 간다. 할머니께서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앞으로도 우리 같은 사람들 잘 부탁한다며 밝게 웃어주셨다.
손녀 손을 꼭 잡고 밖을 나서던 할머니, 행복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