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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Mar 31. 2016

이 길을 걸어야만 하겠구나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스타트업에서 꿈으로

홀가분했다.

가족과 몇몇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의 고민과 결정을 공유했다. 걱정스러운 우려와 힘찬 응원의 목소리 속에서 다시 '꿈'이라는 목표에 달려들었다. 대학원에 지원한 직후부터 합격자 발표와 입학할 때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놀 수는 없었다. 나는 가장이었다.

"아 참, 가장이었지.."

나를 키워줄 성장동력에 대한 욕구와 어마어마한 학비를 감당해야 할 필요성으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 고리타분한 명언이 떠올랐다. 은행에서의 경험이 실패라고 한다면,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너무나도 죄송하다. 그렇게 말하기엔 나에게 처음으로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은행업무는 적어도 나의 꿈과 직결되는 직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반면교사 삼아 조금은 신중하고 조금은 나 스스로를 반성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과거에 품었던 취업에 대한 갈망이 부화뇌동은 아니었을까.

강점을 살려보자. 나에게 맞는 옷을 입어보자.
이왕이면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내 목소리가 드러날 수 있는 곳.
그러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이었으면 싶었다.

마침 대한민국은 '스타트업(Startup)', 옛날 말로는 벤처(Venture)라고도 불리었던 분야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스타트업에 대한 막연한 첫인상은 젊은 청년들이 젊은 분위기 속에서 효율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을 가지며 결론을 도출해가는 모습이었다.

청춘들이 자신의 젊음을 꿈으로 먹고 사는 곳.

어렵사리 요즘 대세라는 'O2O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기업에 입사했다.

스타트업에 대해 이상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있던 것일까?

물론, 나의 개인적인 경험 역시 수많은 스타트업들 중 한 곳에서 겪인 한 개인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은행과 그 스타트업 중 양자택일의 기회가 또 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은행을 택할 것이다.

내가 겪은 스타트업의 조직과 문화는 은행의 작은 버전이었다. 자유로운 '소통'이라는 가면을 쓴 채 일방적인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단순 업무의 반복으로 업무 시간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가파른 성장 속에서 '또 다른 기회'라는 희망고문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스타트업이라는 말 앞에 '대한민국의'라는 말을 넣고 싶다.

아니면 지원할 당시부터 마음이 없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앞으로의 학비를 위한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여겼다면,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옆 자리의 동료들과 술 자리를 가지며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일할 바에는 다시 은행으로 돌아간다." 이 한 마디에 어찌나 많은 공감 버튼을 눌러주었는지. 인터넷 댓글로 따지자면, "좋아요 1000개, 싫어요 8개"

나의 생각과 판단에 객관성을 얻었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앞으로의 꿈이 꿋꿋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겪어온 일련의 시간과 경험들은 나의 인생에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 길들을 걷기 전에는 내가 정말 걸어야 할 길을 방해하지는 않을까라며 걱정했다. 그 길을 모두 걷고난 지금은 오히려 길이 뚜렷해졌다.

"이 길을 걷고 싶다"에서
"이 길을 걸어야만 하겠구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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