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이는 추억과 회한, 슬픔과 동정
2018년 02월 16일 군산
일제강점기 당시의 작품인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서해로 흘러나가는 금강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논산 시골집 근처에서만 보던 금강이 어느새 군산까지 흘러들어와 탁류가 되어 서해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만날 설날이 되서야 서울에서만 내려오던, 그래서 마냥 시골같았던 다른 도시들을 이제는 이 강 하나가 도시 사이사이의 거리를 알게 해주고, 도시라는 점과 점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주고, 또 다른 거대한 틀에서 인식하게 만들어주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논산의 논과 산보다 군산의 서해 바다가 더 친근하고 싶고, 비록 탁류이기는 하나 바다와 강이 만나 만들어내는 청량함은 언제나 좋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이 하나 있다.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채만식 문학관에서는 그 기찻길을 볼 수 있고,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오래전에, 초등학교도 채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내 손을 붙잡고 단 둘이 논산으로 내려온 적이 있다. 어떻게 내려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올라오던 날은 생생하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눈물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논산역에서 낡은 기차를 탔는데, 그 때 그 기차는 저 금강을 가로질러 익산을 거쳐 논산으로 온 것일까. 엄마의 눈물은 자신을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그리고 고된 시집살이에서 온 서러움과 회한, 섭섭함으로 가득찬 슬픔이었을까, 자신의 삶은 전연 뒤돌아 보지도 못한 채 처음으로 자신의 배에서 난 자식을 키우며 겪어 왔던 우여곡절, 그 우여곡절을 묵묵히 이겨내고 자신의 부모에게도 스스로 부모의 길을 멋지게 해내고 있음을 증명한 것에 대한 희열의 눈물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그 때 이곳을 흘러내려가던 금강은 엄마에겐 탁류일 터였다.
채만식은 <탁류>를 쓰며 한 치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스스로와 식민지 조선인의 현실을 묘사했다. 탁류는 자주 인용된다. 도로 위에 팻말 하나가 걸려 있다.
'군산 조선소 떠나고 한국GM마저 떠나면 군산시민 다 죽는다!'
해방 이후 우리의 삶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우리 대다수가 여전히 불행한 현실, 혹은 불투명한 미래를 살고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욱 힘든 삶을 살 것이라는 절망과 슬픔을 느끼며, 탁류를 되새긴다. 탁류는 변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금강이 지금도 여전히 탁류이듯, 현재 우리의 삶도 여전히 탁류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 탁류는 군산을 넘어 우리 모두의 삶의 기억 속에 조심스레 스며들고, 이내 마치 존재의 시작부터 함께였던 듯 남아있게 된다.
가끔은 나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모자람, 그리고 덜어내고 싶은 과거, 잊고 싶은 슬픈 추억을 겉보기에, 어떠한 연관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래서 그러할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상대방도 가지고 있음에 친근감과 더불어 위로를 얻곤 한다. 금강은 한강물과 비슷하다고 느낄 여지는 충분했지만, 설날 나의 눈에 비춰진 금강은 너무나도 혼탁한 탁류였다. 군산 시민들의 모습에서 탁류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비춰진 그 강과 바다가 탁류로 보인 뿐이다.
약 100여 년 전을 살았던 그에게도, 20년 전의 엄마에게도, 지금의 나에게도 탁류는 흘렀고, 흐르고 있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러하겠지만,
다시 금강을 마주했을 때에는 우리 마음에 조금은 혼탁함을 덜어낸 탁류일 수 있을까.
#탁류 #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