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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Aug 17. 2018

"평화의 상징", 히로시마(廣島)

잊혀진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시선을 위하여

히로시마, 평화


히로시마에 다녀온 것은 2016년이었다. 중국어를 배우던 학생이 일본 여행을 추천하면서 2016년 5월 일주일 동안 일본을 다녀왔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냈는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내가 책임지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케줄을 조정해서 다녀왔던 기억은, 일반적으로 휴가를 받아서 떠나는 여행과는 달랐다. 아무튼 그때 떠났던 일본 여행이 계획부터 돌아오기까지 모든 과정이 행복했기에 동일한 해에 두 번째 여행을 떠나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는, 아마도 2016년 여름 에어서울이 첫 취항을 시작하고, 연이어 한창 특가 이벤트를 진행하던 찰나에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비행기표를 예매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다른 도시들도 많은데 "왜 하필 히로시마인가"라는 물음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다. 일전에 잡지를 읽다가 히로시마가 소개된 글을 본 적 있는데, 그 페이지 한 켠에 다음과 같은 제목과 사진이 걸려 있었다.


멈춰버린 시계

역사를 전공하긴 했지만, 특정한 시기와 사건,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비전공자보다 약간 정확할 뿐이지, 깊이있는 지식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그 시기나 사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애석하게도 나에게 그나마 친숙한 일본 역사는 메이지 유신까지였고, 어느 잡지에 실려있는 글을 보지 못 했더라면 나는 지금도 히로시마를 원폭의 피해 도시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히로시마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히로시마에 사람이 살고 있나'

'히로시마 가면 피폭되는 건 아닌가'


나 혼자서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런 어린 생각들을 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도 히로시마 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되려 한 번쯤은 받았던 질문들이다. 위의 사진은 평화공원 원폭 기념관에서 촬영한 것인데, '멈춰버린 시계'라는 소개 문구 옆에는 히로시마가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서 묘사되어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의 결말을 장식했던, 참혹한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토해냈던 도시가 지금은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탈바꿈되어 한국인들에게 소개되고 있던 것이다. 더군다나, 서양인들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찾는 도시라니. 왠지 선진국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고 하면 괜스레 혹하는 것도 있지 않겠나. 실제로 히로시마 시내를 거닐면서 동양인보다는 서양인들을 더 많이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히로시마로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호기심으로 가득찬 도시가 괜찮은 현실적인 조건(?)을 만나 만남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한국인

히로시마에서 옛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과거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유쾌한 흔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당시 징용과 정신대로 히로시마에 끌려왔던 식민지 조선인들도 히로시마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과 함께 희생당했다. 먼 타지에서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잠들어버린 것이다.

아픈 희생, 뼈아픈 흔적

문제는 한 때 여러 인터넷 기사와 매체에서도 대서특필되어 많은 한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바로 히로시마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인들의 '현재' 이다. 그것은 당시 희생당한, 내지는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인'들의 현재와 비교되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일본인

2018년 4월에는 나가사키를 다녀왔는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닮은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두 도시는 2차 대전 직전까지만해도 주류 도시에 속해 있었고, 2차 대전 중에 원폭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는 일본의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다고도 할 수 없는 도시로서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는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차례의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모든 일본인이라고 확대해석할 수는 없지만,


기억의 재생산

'일본 당국은 2차 대전을 어떻게 인식하게끔 만들고 싶을까'

'일본 시민들은 2차 대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서도 나름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섬세하다고들 한다. 말을 할 때에도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음식과 음료를 만들 때에도 작은 데코 하나까지 신경쓴다. 하물며, 자신들의 도시를 기리는 상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떻겠는가.


문화의식


마냥 잘잘못의 기준을 들이대며 히로시마 시내를 휘젓고 다니지는 않았다. 2016년 일본을 처음 접했을 때, 일본인들의 문화의식 수준에 대해 깊이 탄복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일본 여행을 더욱 선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환상을 가질 만큼은 아니지만(다른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 그 문화의식으로 인해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단편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유


한국의 여러 작은 도시들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여유. 히로시마는 모든 것들이 느리고, 조용하다. 이 작은 도시에서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은 일종의 여유와 순진무구함이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들이 이 작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천천히 흘러가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즈음이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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