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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May 03. 2020

한일 관계의 필연적인 현실

자본주의화된 한국 사회와 한일 관계의 특수성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지리적인 특성 덕분에 인류의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전할 무렵부터 관계를 맺어왔다. 때로는 문물을 교류했고, 때로는 빗장을 걸어 잠군채 관계를 단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에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한반도를 침략하기도 했다. 또 어느새 국교를 정상화하고 교류의 폭을 넓혀왔다. 정치와 경제 분야의 교류는 민간 차원의 문화 교류의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양 국은 과거의 어느 시절처럼 관계를 회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길게 보면 1863년부터 1945년까지 약 100년 간의 시기를 바라보는 양 국의 태도와 온도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으로 시작된 일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땅히 해결하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것이었다.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자금 마련이 최우선이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개별 배상 문제나 문화재 환수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역사 왜곡 문제 등 모든 것들이 간과되었다. 그렇게 수 십년이 흘렀고, 한국과 일본 사회는 조금씩 세대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식민 지배를 겪지 안은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가 기성 세대만큼 식민 지배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듯,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한민족을 억압한 민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성 문제이며, 동시에 인권 문제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의 당시 한국은 여성의 성 문제에 대해 상당히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해방 직후의 수많은 피해 여성들이 한국 사회의 견고한 유교 문화가 잔존하는 현실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확신을 가지지 못 했고, 돌아와서도 숨 죽인채 슬픔을 삭혀야 했으며, 심지어 귀국을 포기한 사례도 많다. 


그 이후로 한국 사회는 급격한 경제 성장를 이루어내고, 깨어 있는 시민들이 정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며 나름의 '발전'을 해왔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정권에서는 역사 문제를 쉬쉬했고,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전히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당시에는 진보적으로 보였을 투쟁의 선봉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민감하게 다가가지는 못 했을 것이다. 이 문제는 2020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렇듯, 비교적 최근까지 국내에서도 한일 관계의 온전한 정상화를 위한 기본적인 준비 작업, 즉,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공감이 부진하게 이루어져왔다. 사회 내부에서 먼저 역사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야만이 주요 쟁점들이 힘있게 부각되기 마련인데, 이조차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의 미온적인 대응과 지속적인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각한 역사왜곡에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항의를 한다지만, 항의는 공허한 외침인 말뿐인 항의로 끝나버린다.


대학원 수업의 토론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했더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나는 팽창적으로 자본주의화된 한국 사회에 원인이 있다고 대답했다. 자본은 모든 것들을 취하게 하며, 모든 것들을 망각케 한다. 자본은 '성장'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성장' 앞에서 모든 것들이 무기력해진다.


적어도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역사 문제와 경제 교류는 대척점에 있다. 현재는 정부 차원에서 역사 왜곡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과거사 문제를 온전히 청산하기 위해 경제 교류 단절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또 다른 '냉전'을 맞이한 양국 관계의 모습은 현 정부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민감도와 일본 정권의 극우화 및 심화된 역사 왜곡, 높아지고 있는 시민 의식 등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양국의 역사 문제와 경제 교류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양국이 얽힌 역사 문제가 일단락되지 못하면, 견고한 정치경제적인 교류가 어렵다는 사실을 지난 수십년 간의 양국 관계를 통해 확인했다. 이는 다른 국가와 형성하게 되는 국제질서와는 차별화되는 한일 관계의 특수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경제 교류가 확대되는 와중에 어떠한 형태로든 과거사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를 때면 서로를 증오하고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며 진행되던 국가와 기업 차원의 교류, 혹은 관광 산업과 같은 민간 차원의 교류를 일부 단절해왔다. 


이렇게 하나둘씩 생기는 양국 관계의 흠집은 조금씩 살 속으로 파고든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단순히 역사라는 하나의 분야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사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대국의 민족과 문화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마 누군가는 일본의 코로나19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 대해서도 일본인만의 특정한 고유 문화를 지적하며 비하했을 것이다. 일본과 관련된 문제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과거사 문제로 견강부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침략하고 침략당한 관계이기에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역사가 종결된지 1세기 채 지나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앙금이 빚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된다고 해도 그 앙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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