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와 비견되는 양안의 92공식
목 차
I. 머리말
II. 연구 방법
1. 질적 연구의 필요성
2. 자료 수집 방법
3. 연구참여자 선정
4. 자료 분석 방법 및 과정
5. 연구의 타당성과 제한점
III. 연구 결과 및 논의
1. 양안 관계 인식
1) 대만의 청춘 드라마는 우리의 우상(偶像)이다
2) 대만은 역사이래로 중국의 고유한 영토이다
3) 대만 문제는 민족단결 문제의 핵심이다
2. 남북 관계 인식
1) 한국 언론은 북한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2) 항미원조(抗美援朝), 중국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3)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의 제재가 남북 갈등의 원인이다
3. 양안과 남북 관계 인식 비교
1) 남북은 국가 간의 외교 관계이며, 양안은 중앙 정부와 지방의 관계이다
2) 남북과 양안의 내분은 미국에 의한 민족상잔이다
III. 연구 결과 및 논의
1. 양안 관계 인식
1차와 2차 면담을 통해 연구참여자들의 개인 정보 및 본인들이 중국에서 받아왔던 역사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자는 이 과정에서 역사교육 인식에 대한 개념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역사교육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국제 관계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는 요소의 범주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역사교육학계에서는 건전한 역사인식 혹은 역사교육 인식의 형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개념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인식’이라는 용어가 ‘지식’과는 차별화되는 차이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듯 보인다. ‘인식’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식이라는 말은 지식과 같은 뜻이지만, 지식은 아는 작용보다도 이미 알고 있는 성과를 가리키는 데 반해, 인식은 성과와 함께 아는 작용도 포함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인식 과정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객관 세계(자연ㆍ사회)에 대한 인식(지식)을 획득하고, 이 성과에 기초하여 객관 세계에 작용을 가해 이것을 변화시키고 개조한다. 인식의 의의는 단순히 객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지적 만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에 그 실제 생활에 기여하는 것에 있다.
(임석진 외,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네이버 백과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88531&cid=41978&categoryId=41985, 2018.10.08. 검색)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지식’은 사실을 탐구한 결과로서 특정한 단어나 이론, 규칙 등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용어인 반면, ‘인식’은 이를 포함하여 사실을 탐구하기까지의 모든 사유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언급하는 ‘역사교육 인식’ 역시 역사교육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이를 수용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차원으로 정의내리고, 연구참여자들로부터 이를 파악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3차 면담은 개개인의 역사교육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대만과 관련된 역사교육과 양안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대만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인식을 파악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양안 관계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바로 통일 문제이다. 중국에서 두 지역 간의 통일 문제는 1949년 이후 냉전 시기 동안에는 ‘대만해방’이라는 표현으로 무력통일의 대상으로서 인식되었다. 이어 탈냉전이 진행됨에 따라 중국 내부에서도 평화통일 구호가 등장했고, 그 결과 양안 쌍방은 1992년 홍콩회담에서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합의점인 ‘92공식’에 이르게 된다.
‘92공식’은 연구참여자들의 답변에서도 대부분 등장할만큼 양안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하나의 중국’을 둘러싸고 양안이 구술과 서신 교환으로 벌인 토론을 의미한다. ‘92공식’에서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보았고, 대만은 스스로를 별개의 국가로 인식했기 때문에 두 지역은 관점의 폭을 좁히지 못 했다. 결국 ‘하나의 중국’에 대한 입장은 양안이 동의하지만, 이를 해석하는 관점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선에서 합의되었다. 비록 법적인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양안의 긴장국면 완화라는 현상유지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92공식’은 양안의 신뢰를 다지는 계기이자 교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 정부에서 양안의 ‘평화발전’이 공식적인 양안담론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평화발전’이 갖는 의미에 대해 중국이 가진 절대적인 힘의 우세와 자신감에서 드러나는 지구전적인 성격의 의미로서 대만의 불만과 우려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용어라는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쯔위(周子瑜) 사건을 통해서 중국에서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대만 측의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대다수 중국인들에게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대만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 결코 허용될 수 없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중국에 통일되어야 할 당위적 과제의 지역인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이러한 인식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정치‧경제적인 사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국인 개개인들의 사고와 견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야 한다. 그 결과,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역사교과서 상에 민족단결과 통일을 저해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입장에 대한 서술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92공식’으로 시작된 양안 간의 평화 협력에 대한 논의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불 수 있다.
([대만 첫 여성총통 시대] 대만인을 투표장으로 데려간 ‘쯔위 사건’, <경향신문>, 2016.01.18. 00:08:20. 작성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180007545&code=970204, 2018.11.19. 검색)
그렇다면 과연 연구참여자들은 대만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양안 관계와 대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선, 학교 교육을 제외한 유년시절의 대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파악하기 위한 인터뷰부터 진행되었다. 연구참여자들은 모두 학교에서 대만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나 정치적 쟁점을 학습하기 이전부터 대만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는 학교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 혹은 인식과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본 장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의 대만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부터 시작하여, 학교 교육을 통해 대만과 관련된 학습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개개인의 견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