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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Feb 09. 2021

첫 직장과 2,200만원

직업에 대하여 - 꿈과 현실①

사실 첫 직장은 주변에 아무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말한 적 없다. 잠시 스쳐지나간, 찰나같은 곳이기도 하지만, 불유쾌한 기억만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곳은 유명한 학원가에 있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역사만 전문으로 하는 역사 학원이었다. 그 학원가에 비주류 과목인 역사만을 전담하는 학원이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때의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까지도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온 교사로서의 길을 가야 하는가, 아니면 부족한 가정 형편을 고려해 빠른 취업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대학원을 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시큰둥한 반응이었고, 교수님들도 그렇게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만큼 문사철이 공부로 밥 벌어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이미 군복무 시절부터 준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취업에 대한 왠지모를 두려움과 불안함, 혹은 의무감이 늘 있었던 듯 하다.


'최선을 바라보되, 차선에 대비하자'

이 생각에 자석처럼 끌렸다. 위인이 남긴 명언은 아니다.


군대에서 한자, 한국사, 토익 닥치는대로 공부해서 '스펙'을 쌓아놓자고 결심했고, 착실히 준비해서 제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에 다녀와서 제2외국어를 독파했고, 소위 8대 스펙이라 부를만 한 것들을 채워나갔다. 그나마 전공을 덜 본다는 은행에 자소서를 쓰면서 뭐라도 들이밀기 위해 금융 3종을 취득하려고 머리를 쓰기도 했다. 대학원만을 마냥 꿈꿨다면 그 자격증 책 자리에는 한문으로 가득한 전공 책이 놓여져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다음년도 2월에 졸업을 앞둔 나는 한 학기를 남기고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8월 여름날 그 학원의 역사강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역사를 가르치고 싶다는 꿈이 있던 것이지, 무조건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꿈은 아니었으니까. 라고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면접은 총 2-3차례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니 나름 면접의 일정이 빡빡했다. 수업 실연을 두 번이나 시키고도 마지막 최종면접이 진행되었으니, 거의 대기업만큼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광해군을 어떻게 수업할 것인가를 물어봤고, 그간의 교육이 광해군을 부정적으로 설명해왔다는 설명과 그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의견을 어필했다. 나의 의견과 역사교육관에 대해 그쪽에서도 흡족해하는 눈치였고 나는 채용되었다.


날아갈 것 같았다. 이전에 보습학원에서도 중고등학생들에게 1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 때 원장으로부터 수업 실력이 제법 괜찮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마음을 굳힐 계기가 생겨난 것이다. 적어도 '내가 남들보다 모자라지는 않구나', 나아가서는 '내가 교육으로 먹고 살아도 되겠구나',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등등의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연봉계약서를 썼다. 연봉은 심플했다. 2,200만원. 보너스, 성과급, 상여 없이 정확히 2,200만원을 12개월로 나눈 금애을 지급받는 시스템이었다. 연봉협상이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경력이 없는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적은 액수였다. 연봉에 적힌 숫자를 봄과 동시에 이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현실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학원의 강사로 지원한 것은 지금 나의 처지에서 최선의 방책이라는,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회로에서 나온 것이다. 그 핵심은 내 전공인 역사를 가지고 내가 원해왔던 교육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 생각 하나만으로 조금은 섣불리 행동한 건 아닐까. 연봉계약서를 보고 그 숫자를 확인하면서 현실적인 생각회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근무 여건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복리후생은 어떠한지, 학원의 분위기, 인사제도나 앞으로의 전망 등등.. 그 찰나에 그렇게 더 어른스러워지다니.


왜 그제야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까.

내가 생각이 짧은건가, 너무 순수한 고민만 한 건 아니었나. 나만 이런가.

그래도 어린 나이인데,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역사는 가르치되, 푼돈 받으며 일해도 상관 없다는건가.

지나치게 돈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건가.

이대로 사인하면 내가 그동안 준비해온 모든 스펙의 결과물이 그 숫자로 귀결되는 건가.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면 자연스레 그 숫자에 대한 실망감이 상쇄되려나.


그 생각들은 "나의 노력과 몸값이 정당하게 지불되고 있는걸까, 일하면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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