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석 Mar 31. 2016

최선을 꿈꾸되, 차선을 준비하자

내 꿈이 과연 온전히 살아 숨쉴 수 있을까

역사를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에 역사교육과도 몇 없었을 뿐더러, 공부를 늦게 시작한 터라 사범대학에 진학할 성적도 마땅치 못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심지어 우리 학교는 교직이수도 불가능한 학교였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교육대학원을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은 다급했다.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보려면 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거지.."라며. 그래서 나의 대학시절에는 남들은 다 있는 휴학이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후회된다. 요즘 말로, "넘나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휴학이 없다는 사실.

군대를 다녀온 뒤 국가에서 우연히 해외탐방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에 선발이 되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인터뷰를 맡고, 해외탐방 주제에 대한 간략한 연구방향자료를 내가 담당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의 전공이 빛을 발휘했다. 역사를 전공하려면 '글 쓰기'가 중요했고, 논리적인 설명이 필수적이었다. 나는 역사 전공으로 밥 벌어먹겠다는 사람이었기에, 내 전공 분야에서만큼은 전문성을 쌓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첫 번째 순간이자, 내 인생을 뒤흔드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유럽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다른 대학에서 온 팀도 그러하였듯이, 몇 주 간의 일정 중 며칠만 주제 관련 탐방을 진행하고 나머지는 유럽 문화를 식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몇 주 간의 여정은 한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마인드를 길러주었다.

그 때 나의 꿈을 건드리는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시련은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거나, 본인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을 때 혹은 발휘되더라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찾아온다. 하지만 나의 시련은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외부로부터 슬금슬금 다가오는 시련은 막을 수도 없었고,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다. 

가정이 두 동강이 난 뒤 곰곰히 생각했다.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곰곰히 막 다녀온 유럽 여정을 떠올렸다.
"최선을 바라보되, 차선을 준비하자."

그 때 3학년의 대학생으로서 처음으로 '취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소위 '스펙'을 갖추기 위해 움직여야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꿈을 놓지는 않았다. 여전히 전공에 대한 열정은 1순위였다. 그리고 나의 전공과 유럽 여정을 준비했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중국으로의 유학을 결정했다. 중국어라면 나의 전공에도, 그리고 혹시나 모를 취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일종의 '보험'을 준비한 것이다.

전공을 공부하며, 군대에서 공부하며 틈틈이 익혀두었던 한자실력이 중국어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전공 분야에 투자했던 나의 노력이 두 번째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중국 유학을 결정하면서 생활비와 더불어 중국 유학비도 함께 벌어야 했다. 학원 강사와 과외를 뛰고, 학교 연구소에서 국가근로로 생활비를 벌었다.

귀가하면 바로 쓰러질 정도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마음만은 설렘으로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중국을 다녀오고 나서는 내 꿈이 과연 온전히 살아 숨쉴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꿈은 있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