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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Mar 07. 2021

항미원조(抗美援朝),
중국은 자국을 위해 참전했다

목    차               

I. 머리말         

II. 연구 방법 

  1. 질적 연구의 필요성 

  2. 자료 수집 방법 

  3. 연구참여자 선정 

  4. 자료 분석 방법 및 과정 

  5. 연구의 타당성과 제한점    

 

III. 연구 결과 및 논의 

  1. 양안 관계 인식 

1) 대만의 청춘 드라마는 우리의 우상(偶像)이다

2) 대만은 역사이래로 중국의 고유한 영토이다 

3) 대만 문제는 민족단결 문제의 핵심이다 


  2. 남북 관계 인식 

1) 한국 언론은 북한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2) 항미원조(抗美援朝), 중국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3)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의 제재가 남북 갈등의 원인이다


 3. 양안과 남북 관계 인식 비교

1) 남북은 국가 간의 외교 관계이며, 양안은 중앙 정부와 지방의 관계이다 

2) 남북과 양안의 내분은 미국에 의한 민족상잔이다



2) 항미원조(抗美援朝), 중국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연구참여자들은 북한의 역사 중 중국과 직간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역사를 중심으로 배웠기 때문에 한국 전쟁 이후의 북한 역사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 따라서 학교 역사교육을 통해 형성된 인식은 1950년대 초반의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위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후의 시기에 대해서는 학교수업에서 다루어지지 않았고, 교과서상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연구참여자들의 인터뷰 결과를 살펴보면,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연구참여자들이 학교 수업이외의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과 북한의 관계 인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학교 교육 이외의 수단과 경로를 통해서도 변화의 여지는 충분했다.

  연구참여자들과 한국과 북한 각 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인터뷰하면서 앞서 살펴보았던 연구참여자들의 역사교육 인식이 남북 관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과 미국 양 국과의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연구참여자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중국과 북한이 동일한 사회주의 체제 하에 냉전 시기를 함께 보내며 동맹국으로써 긴밀한 외교 관계를 형성해왔다는 점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 대해서는 냉전의 상대국 중 하나로서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까지는 교류가 제한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남북 관계 인식에 있어서 미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안 관계 인식의 경로는 연구참여자마다 다양하게 나타났던 것과는 달리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은 정부 당국의 선전과 학교에서 실시된 역사교육이라는 두 가지의 큰 경로로 나타났고, 실제 인식에서도 연구참여자9와 연구참여자10을 제외하면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두 가지 경로는 정부 당국의 선전은 주로 현재적 관점에서 중국과 한국, 중국과 북한의 국가 간 외교 관계를 중점적으로 보도하고 있고, 역사 수업에서는 냉전 초기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본 장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이 학교 역사수업을 통해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에 대해 어떠한 견해와 인식을 형성해왔는지 파악하기 위한 심층 면담을 실시했다. 우선, 연구참여자들에게 남북 분단의 원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남북 분단에 대한 인터뷰를 끝낸 후 구체적으로 전쟁과 관련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남북 분단과는 달리 한국 전쟁은 중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건이었다. 중국은 연합군의 참전을 계기로 인민군을 파견하여 북한을 지원했다. 이러한 사실 관계를 전제로 연구참여자들과 한국 전쟁을 어떠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흥미로운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연구참여자1]: 저는 남북 분단이 외국의 간섭에 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요한 원인은 남북 쌍방의 정치적 주장과 타국의 개입으로 인한 것이죠. 학교에서 남북 전쟁을 항미원조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중국을 보위하기 위한 전쟁이었는데요, 마오쩌둥 국가 주석이 한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연구참여자2]: 분단과 전쟁의 원인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항미원조로 배웠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참여자들이 한국 전쟁을 ‘항미원조’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역사교과서 상의 서술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구참여자는 비록 한국 전쟁을 ‘항미원조’라는 개념으로 배웠다고 답변했지만, 그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 분단의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전쟁의 주동자 역시 북한이라고 답변했다.

  남북 분단의 원인에 대한 연구참여자들의 인식은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다수의 연구참여자는 학교 역사수업을 통해 남북 분단을 냉전의 사례들 중 하나로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답변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인다. 다만, 연구참여자1과 연구참여자3으로부터는 세부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연구참여자1은 남북 분단의 주요한 원인으로 정치 세력 간의 세력 다툼이라는 내적 요인과 냉전 체제라는 외적 요인을 들어 남북 분단의 원인을 설명했다. 연구참여자는 학교 전공 수업을 통해 냉전 시대의 정치 구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3]: 저는 종합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일제 강점기 당시 한반도 내부 및 해외로 망명해 있던 독립투사들과 정치가들이 이미 다른 파벌을 이루고 있었고, 이 파벌들은 각기 다른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냉전 국면에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누어 통치했습니다.     


  연구참여자3 역시 남북 분단의 원인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답변했다. 그는 한국 대학에서 역사 수업을 수강하면서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학습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는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은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연구참여자는 일제 강점기부터 정치 노선과 이념에 따라 한국의 민족 운동가들이 하나로 단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북 분단이 가시화되었고, 결정적인 요인은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의한 것이라 답변했다. 이는 연구참여자1과 동일한 답변으로,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결합되어 분단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연구참여자3]: 중공군의 참전은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것입니다.     


[연구참여자5]: 두 나라 간의 전쟁과 중국의 참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죠. 중국에 대해 말하자면, 소련의 압력과 미국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순망치한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요… 일단 북한에 큰 변고가 생기게 되면반드시 중국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죠그래서 …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연구참여자들은 중국군의 참전이 자국의 안보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답변에 대해 연구참여자마다 어감의 차이가 나타났는데, 연구참여자1과 연구참여자4, 연구참여자7은 국가를 보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의 부당한 침략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하기 위한 자발적인 투쟁의 결과로 인식하고 있었다. 즉, 중공군의 참전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답변으로 보인다. 한국 전쟁에 관한 교과서 서술의 말미에는 중공군의 참전에 대해 중국과 북한의 평화와 독립을 지켜내고, 미국의 침략을 격퇴한 성전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역사교과서의 서술 맥락과도 일치한다.

  반면, 연구참여자5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몇몇 연구참여자는 중국의 참전을 부득이한 선택이었다는 견해를 보였다. 연구참여자5는 전쟁이 발생할 당시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순망치한’의 관계로 표현했다. 순망치한이라는 표현은 중국 학계에서도 일반적으로 북한이 미국의 영향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용되곤 한다. 물론, 연구참여자3이나 연구참여자5 역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있었으나, 전쟁 도발의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쟁을 도발한 당사자를 원조하기 위해 파견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또한, 연구참여자들은 자국이 전쟁에 휘말린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을 꺼려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참여자4]: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인한 것이죠.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격언이 이에 해당합니다. 남북 전쟁은 북한을 도와 미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것입니다.     


[연구참여자7]미국이 일으킨 것입니다.     


[연구참여자8]미국이 중국의 지리가 넓고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것입니다.     


  학교 교육을 제외하면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의 역사를 접할 경로가 부재한 상황에서 연구참여자들은 교과서상에 서술된 내용을 토대로 한국 전쟁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그 결과 몇몇 연구참여자들로부터 미국을 침략의 주체로 설정한 서술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참여자들은 미국의 주도하에 연합군의 군대가 한반도로 상륙하게 되었고, 전쟁이 국제전의 양상으로 확대되었다고 답변했다. 전쟁을 일으킨 주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 하고 있었고, 소련과 북한 등 다양한 세력을 언급했다. 그러나 연구참여자들의 답변에서 분명한 것은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전쟁이 더욱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에 따라 부득이 국경을 접하고 있던 중국이 부득이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참여자5]: 저는 조선 전쟁, 내지는 남북 전쟁이라고 배웠고, 민족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김일성 쪽이 도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참여자6]남북이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양 국의 상대방이 주동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고 싶어 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연구참여자10]: 저는 한국에 온 이후에 북한이 먼저 도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참여자5와 연구참여자6, 그리고 연구참여자10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했다고 답변했다. 연구참여자5의 역사교사는 양안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교과서 이외의 학습 자료를 함께 활용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했고, 그 결과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참여자10은 한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한국과 북한의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연구참여자로 하여금 한국 전쟁에 관한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고,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탐색하면서 분단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중공군의 참전에 대한 연구참여자들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중국군의 참전에 대해서는 일부 연구참여자들이 연구자와의 대화를 불편해했다. 이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함에 따라 한국인인 연구자가 연구참여자의 답변에 대해 불편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우려를 사전에 불식시키긴 했지만, 중공군의 참전에 대한 연구참여자들의 답변에 대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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