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ti May 21. 2024

03. 쓰레기는 마음의 짐이다

청소와 기분의 상관관계

스스로 바뀌기를 결심한 순간, 나는 컴퓨터를 껐다. 방 안을 밝히던 유일한 광원이 사라지고 찾아온 암흑은 두려움을 일으켰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만 겨우 들리길 몇 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사진: Unsplash의 Srinivas Reddy

내 생에 그렇게 끔찍한 감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발 밑으로 형언할 수 없는 불쾌한 물체가 푹 밟히는 느낌 말이다. 그와 동시에 올라오는 오래된 음식물의 역겨운 냄새까지. 평소엔 치우기 귀찮아 내던져두었던 쓰레기가 어떤 존재인지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었다.


마침내 불을 켰을 때 목도한 광경은 상상이상으로 더러웠다. 항상 불을 끄고 모니터에만 의지해 살았기에 보지 못했던 내 삶의 모습이었다. 새삼 깨닫고 나니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았나? 내가 이렇게 살았나? 어떻게 지낸 거지? 발 하나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찬 쓰레기장은 방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쓰레기처럼 보일 정도였다.


나는 본래 청소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사람이었다. 쓰레기를 이 정도로 방치한 이유도 대충 엇비슷했다. 귀찮으니까. 언젠가 치워야 할걸 알면서도 굳이 지금 해야 하나 싶어 외면해 온 결과가 지금에 이른 것뿐. 어쩐지 방에서 퀴퀴하고 역겨운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분명 났을 것이다. 쓰레기장에 파묻혀 사느라 몰랐던 거지. 남도 아닌 내가 만든 쓰레기산인 만큼 얼마나 더러운지 모를 리가 없었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니. 문득 울고 싶어졌다.


사진: Unsplash의 Gary Chan


그러나 이대로 그냥 살 수는 없었다. 한 번 거슬리기 시작하니 밑도 끝도 없이 신경이 쓰였다. 결국 나는 청소를 결심했다. 비록 한 번 결심하고 움직이기까지는 무려 3시간이 걸렸지만. 움직이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쓰레기봉투가 끝도 없이 찼다. 봉투가 찰 때마다 비우고, 또 비우고. 도저히 하루 만에 치울 수가 없어 이틀은 걸렸던 것 같다. 워낙 청소를 안 했으니 어떻게 해야 빨리 치울 수 있는지, 언제 쓰레기를 내놓아야 하는지도 몰라 인터넷을 찾아 헤맸다. 그 와중에도 식사는 챙겨야 했고 이왕 청소를 하는 김에 깔끔하게 씻기도 하고. 이튿날 쓰레기를 다 치우고 나서는 방 청소를 시작했다. 먼지를 쓸고 닦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화장실과 주방도 꼼꼼하게 닦아내면서.




마침내 깔끔해진 방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비록 지쳐서 기진맥진 바닥에 쓰러졌으나, 쓰레기 없이 텅 빈 방은 이게 같은 공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그동안 미뤄온 청소를 끝냈다는 해방감,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까지.


사진: Unsplash의 Anton


이후로 나는 주기적은 아니더라도 쓰레기가 일정 수준 이상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 소소한 청소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쓰레기가 적으면 치우기도 쉬우니 그런 것도 있지만, 뭣보다 쓰레기가 많이 쌓이면 그만큼 피로하고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쌓이면 내가 발을 디딜 공간이 사라지고 공기가 탁해지며, 치워야 한다는 부채감이 나를 압박한다.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귀찮아도 해야 하는 게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청소를 하는 건 단순히 깨끗한 게 좋아서를 넘어서 청소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나를 챙기고 복지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걸. 청소 하나만으로도 내 삶이 상당히 변화할 수 있음을 말이다.



헤더 사진: UnsplashJESHOOTS.COM


작가의 이전글 02. 바뀌고 싶다는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