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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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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Feb 01. 2021

<오늘의 술> 그랜드 올드 파 12년(구형)

올드파는 기울여야 맛이지!

올드파 12년 구형. 점점 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품귀되기 전에 한 번 맛을 보고 싶어 남대문으로 향했다. 주류상가에 도착해서도 금세 못 찾을까봐 살짝 쫄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뜬소문이었나보다. 처음으로 찾아간 상점 매대에서 1리터 구형을 바로 발견했다. 냉큼 집어 값을 치르고 집에 돌아왔다.


올드파는 블렌디드 스카치 중에서도 개성과 특징이 또렷한 위스키로 꼽힌다. 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알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애호가가 꽤 있다고 한다. 12년은 구형과 신형으로 나뉘는데, 구형의 알코올 도수가 43도로 신형보다 3도 높다. 도수 차이가 나면 당연히 맛도 달라진다. 보통 신형이 구형을 못 따라간다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구형을 꼭 구하고 싶었던 이유다.



봉투를 열고 병을 꺼내 찬찬히 훑었다. 병 뒷면에 한 노인 초상화가 붙어 있다. 제품명에 영감을 준 토마스 파(Thomas Parr)다. 400년 전, 이 인물이 152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위스키가 됐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장수의 상징인 그의 이름을 따다 붙였다고 한다.


올드파는 기울여 세울 수 있을 만큼 각진 보틀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술병에선 찾기 어려운 특징이다. 워낙 유명한 각도라, 인터넷을 뒤져 보면 병을 기울여 세운 채 찍은 사진이 많다. 만화 ‘바텐더’에 나와 널리 알려졌다는 말이 있다. 올드파를 구해 놓고 한 번도 기울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다. 나도 덩달아 한 번 세워 봤다. 굉장히 쉽게 선다. 허튼 짓 좋아하는 남자의 특성을 꿰뚫어본 의도적인 디자인일까.



만화 <바텐더> 중


이제 맛을 볼 차례. 소주 한 잔만큼 따라 내 마셔 봤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접해 본 위스키가 몇 되지도 않지만 다른 블렌디드와 결이 상당히 달랐다. 피트 때문인지 약간 한약 맛이 나는 듯하다가도, 견과 향과 맛이 두드러진다. 첫 모금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묵직하면서 부드럽고 달달하다. 고소한 풍미도 있다.


보통 어떤 술이든 첫 잔은 낯설다. 올드파는 아니었다. 초면에 한두 마디 나눴을 뿐인데 베프 각을 재게 되는 친구를 만난 듯했다. 두 잔을 굉장히 맛있게 비웠다. 남대문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 업어올 만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충분히 매력 가득한 위스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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