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통에 숙성한 증류식 소주
친구들과 2박 3일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보통 여행할 때 가장 큰 관심사는 어딜 가 보고, 무얼 먹을지다. 내 경우에는 한 가지가 더해진다. 역시 술이다. 다 돌아다녔고 먹을 만치 먹었다면, 이제 어떤 술을 마실까 즐거운 고민에 빠질 차례다. 여행과 술은 절친, 아니 부부다. 누구도 둘을 갈라놓아선 안 된다. 이번에도 다름은 없다.
낮 동안 잘 먹고 즐기다 저녁 즈음 강릉 이마트에 들렀다. 대충 먹거리를 주워담고 술을 찾아 카트를 몰았다. 금세 진열장을 발견했다. 신이 났다. 주류 코너를 돌면 언제나 설렘 가득하다. 구색이 생각보다 대단하진 않았지만 크게 부실한 편도 아니었다. 어떤 술을 고를까 하다 구석에서 오크젠을 발견했다. 온라인 상에서 호불호가 꽤 갈리던 증류식 소주였다. 나름 멋을 부린 병 디자인과 오크통에 숙성시켜 누런 빛깔을 내는 내용물이 마음을 끌었다. 같이 마실 친구에게 동의를 구해 다른 술들과 함께 구입했다. 어떤 맛을 낼 지 굉장히 궁금해졌다.
이튿날 저녁. 속초 중앙시장에서 회를 떠 왔다. 술 마실 시간이다. 병부터 찬찬히 뜯어봤다. 용량은 500ml로 넉넉하다. 도수는 25도. 병 라벨과 병목 택에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10년을 숙성했다는 문구가 쓰여있다. 제품명도 그렇고, 주요 셀링 포인트인 듯하다.
오랜 오크 숙성을 자랑하는 것치고 색은 옅다. 냉장하지 않은 오크젠을 한 잔 따라 넘겼다. 첫 모금은 꽤 부드러웠다. 은은한 오크 향이 나쁘지 않았다. 상온에서 마시기 좋은 국산 술이 많지 않은데, 역하거나 쓴맛 없이 정돈됐다. 성분표를 보면 가당이 되긴 했지만 입맛을 거스르는 단 맛은 딱히 없었다.
몇 잔 만족하며 마시다 보니, 조금씩 맛이 심심하게 느껴졌다. 순한 블렌디드 위스키에 물을 탄 듯한 맛이었다. 적당한 자극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특징이 옅어진 듯했다. 초반은 분명 좋았는데 중후반부터는 밍밍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25도가 아니라 40도였다면 캐릭터가 더 살았을 것 같다. 물론 내가 고도주에 익숙한 자극충이어서 든 생각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뒷심은 좀 달리지만 여타 다른 증류 소주 제품과 구별되는 특징이 또렷해 나쁘지 않았다. 접해볼 기회가 된다면 냉장보다 상온 보관했다 마시기를 추천한다. 마트에서 보면 한번 정도는 더 사 마셔 보고 싶은 소주다.
한줄평-무난한 첫맛, 아쉬운 뒷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