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를 참고해 제목을 지었습니다
얼마 전 대기업은 아니지만 나름 미래 유망하고 직원들에게도 신경 쓰고 있음이 느껴지는 중소기업에 지원을 했다. 규모는 중소지만 사무실은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층의 건물에서 근무를 하던 곳. 나름 JD가 적합해 업무 기대도 되고 시차출근제가 있어 경기권에 사는 내 입장으로서는 무척이나 좋은 조건이었다.
1차 서류 통과 그리고
며칠 뒤 헤드헌터에게 서류통과가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관련해 메일을 확인하니 PT면접이 있단 이야기를 들었다. 뭐 있을 수야 있지만 작은 회사에서 경력면접에 PT까지 포함이라는 걸 듣고 다소 유난스럽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PT면접은 신입 시절에나 했던 거라 다소 당황했으나 그래도 지금까지 준비해 둔 자료들이 있어 최종 업데이트를 마쳐 기간 내 제출을 했다. 그리고 1차 면접 날. 면접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이렇게 일정이 잡힌 날에는 앞 뒤 여유 있게 시간을 마련해 둔다. 대기하는 라운지에서 높다란 빌딩 아래로 보이는 풍경들을 바라보니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신이 혼동될 쯤 1차 면접을 들어갔다. 시간보다 15분이 늦은 시간이었다. '그럴 수 있지. 실무 하랴 면접 보랴 정신없을 수 있지.'라고 이해하며 들어간 면접실엔 입사할 팀의 팀장과 유관부서 팀장 둘이 앉아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PT를 들어보겠다고 한다. 10여 년 쌓이고 쌓인 경력들을 10분 이내 속사포처럼 말을 하고 자리에 다시 돌아가 심도 깊은(?) 실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솔직하게 내 현재의 상황과 그간 담당 했던 실무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1차 면접은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일주일 후 1차 면접이 합격 후 2차 면접 일정이 잡혔다. 중간에 헤드헌터가 껴져 있던 터라 자칫 인적성시험을 치르지 못할 뻔했다. 아, 중소기업인데도 대기업처럼 인적성 시험이 있다니. 내심 놀라면서 생각보다 힘든 인사과정에 10년 경력직 모집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현직에서 업무를 보던 입장이라 단순 인적성 검사인 줄 알고 퇴근 무렵 접속을 해서 하나하나 문항을 풀어갔다.
헌데 웬걸?
인성검사가 마치고 10년 전에나 보았단 SSAT 문제와 같은 유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땀이 삐질 났다. 이렇게 자리에 앉아서 잠깐 볼게 아니구나 싶어 초침이 흐르는 화면을 보며 자리를 옮겨 휴게실로 향했다. 한데 멋진 우리 회사, 휴게실에선 회사 와이파이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걸 깜빡했다.
그렇게 접속된 화면은 날아가고 이미지는 X로 뜨면서 문제를 풀 수도 뒤로 가기도 누를 수 없는 점입가경의 길로 들어서고 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인사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차저차해서 결국 문제를 거의 풀지 못했는데 혹시나 방법이 있을지, 거진 구걸하듯 부탁을 해서 다시 새로운 아이디를 생성받았다. 그리고 집에서 다시 문제를 풀어 제출을 마쳤다.
그렇게 꿀꿀하고 편치 못한 기분이 계속되던 차 시간은 흘러 2차 면접의 날. 이 날은 대표와 지원한 소속부서의 대표 실장이라는 분이 자리를 했다. 주어 생략된 여러 질문들이 날아왔고 나름 잘 답변을 했다고 생각을 했다. 두 분 다 인상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현 회사에 비하여) 왠지 기분 좋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는데 크나큰 착오였었나.
면접 이후 열흘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헤드헌터에게서 문자가 와 혹시 나에게 따로 연락이 갔는지 물어봤다. 탈락이더라도 연락은 주는 곳이라 다라는 말에 작은 희망을 품었는데 유독 피곤하던 퇴근길을 끝내고 겨우 집에 도착했을 무렵 문자가 왔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라며 최종탈락이라는 내용. 어차피 내게 주어질 패는 두 개였다. 합격 아님 불합격. 둘 중 하나를 받았으니 깔끔하게 털어내야지 뭐 어쩌겠나.
헌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지난한 고생을 하고 (회사 네임밸류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의 고생들) 면접비는커녕 내 두 번의 반차를 날렸다고 생각하니 돈과 시간을 둘 다 낭비한 것만 같아 기분이 탐탁지 않았다. 결국 최종면접에서 탈락을 한 것이 이유였을텐데 그게 무엇일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결국 더 기분이 상했다.
되지 않을 곳이니 안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한 없이 간단한 상황이지만, 그동안 들인 공과 신경을 생각하면 자꾸만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즘에는 중소기업도 이렇게나 어렵게 사람을 뽑는다는 걸 깨달으니 지금 현 회사에 만족하면서 다니는 것도 꽤나 괜찮은 방법이겠다 생각도 들고. 아무리 극한에 치닫더라도 이곳에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버텨내야지.
그리고 차선이자 비밀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빨리 서둘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뒤로 미루고 게을러 뭉개고만 있던 일들을 차근차근히 실로 꿰매듯 시작하고 완성해야지. 시간이 없다. 빠른 실행만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