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을 하다 신설동에 살고 있는 새댁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쭈꾸미가 너무 먹고 싶은데 오늘 독도 먹으러 가면 안될까아아ㅏㅏㅏ"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칼 같은 답변이 왔다. "그렇게 먹고 싶어?" 너어무.
새댁과 나는 직장동료 사이다. 같은 나이, 같은 연차로 직장동료였었다. 지금은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 지내며 종종 서로의 집으로 놀러 가기도 하고(신혼집이라 자주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대뜸 먹고 싶은 게 생길 때 불러다가 입맛 도장깨기를 한다.
한 번은 똠얌꿍이 먹고 싶고 또 한 번은 마라탕에 꿔바로우가 먹고 싶었다. 쭈꾸미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먹고 싶었던 건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마늘이었다. 천호동에는 유명한 쭈꾸미 골목이 있는데 크게 '쭈꾸쭈꾸'와 '독도'파로 갈린다. 사실 내 입은 막 입이라 내가 느끼는 맛은 거기서 거기인데도 나는 '독도'를 고집한다.
여기선 마요네즈에 찍어먹으라며 마늘을 준다.
부산에 내가 정한 맛집 리스트들 있다. 좋아하는 동네의 좋아하는 가게들. 켄터키 후라이드는 장전동 <뉴숯불>과 쌍벽의 <호호 치킨> 국밥은 덕천동 <더도이>, 곱창전골은 서면의 <순대 마을>, 곱창구이는 광안리 <막창집> 그리고 오징어불고기 전골 <구워삶기>
매콤한 불고기 전골집에서도 마요네즈에 마늘을 찍어먹으라며 반찬으로 나오는데, 맛도 맛이지만 그 분위기가 정말 맛있었다. 삶은 계란을 흠짐 없이 껍질을 까다가 뽀얀 계란을 절절 끓는 전골 위에 올려놓고 국물을 끼얹으며 재료들이 익기를 기다리며 부딪히는 맥주잔을 좋아했다. 깻잎쌈에 마요네즈를 찍은 마늘을 먹을때면 그때의 맛이 난다.
땡기면 땡기는 데로 굶주린 입맛을 충족시켜줄 메뉴를 손쉽게 고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와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했는데 세상에 당연한 건 없더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부산이 아니라 서울인 것처럼 동네 친구들도 결혼과 취업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났다.
학창 시절엔 같은 동네에 살던 우리의 공간을 나누며 친해지고, 추억을 쌓았다. 한 시간에 오천 원이었던 노래방, 일 인분에 천원인 맛나 분식집, 만인의 약속 장소였던 롯데리아와 맥도날드가 마주 보고 있는 맥도리아 사거리.
성인이 되어 사귀는 친구에게는 우리의 공간이 아니라 나의 공간을 소개한다. 이사하고서 새로운 동네의 내 맘대로 리스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이드 메뉴지만 메인 메뉴 뺨치는 새우 고로케 튀김이 맛있는 태국 음식점부터 분갈이, 화분받침 비용이 없는 혜자스러운 꽃 농원, 음악에 취하는 리스닝 룸, 모든 음료가 달달한 베이스로 통창이 열리는 카페에 데려가 내가 느꼈던 기분 좋음을 선물해 본다.
답례로 친구의 공간에 초대되어 경험하게 되는 새로운 풍경과 맛, 분위기, 자극에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거리낌 없이 편해진다고, 나는 그렇게 느낀다.
애정 하는 대학 친구 경이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로지 나를 보러 온다. 내가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하고서 6개월 만에 첫 방문이며 이번 만남까지 취소한 기차 티켓이 2장이나 있다. 기차만 예매하면 코로나가 돌림노래처럼 터져서 능동 감시 기간이 늘어났다. 동네 마실도 눈치 보이는 판국이라 부산 시외로 떠나야 하는 서울행 기차 티켓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프라이즈로 준비했던 전시회 티켓이 공중분해되었다.
몇 번의 취소 끝에 만나게 될 3월 마지막 주 주말, 꾸리한 날씨에 일기예보에서는 금요일 퇴근길부터 태풍급 비가 쏟아진다고 했다. 출근길, 집을 나설 때 장우산 하나를 손목에 걸고 접이식 우산 하나를 가방에 챙겼다. 부산에서 시속 300km로 달려오고 있는 경이에게 연락을 남겼다.
"오늘 저녁 6시 독도 본점에서 만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