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물건이 집에서 사라지다
물건을 떠나보내기로 약속한 첫날입니다.
고심 끝에 추려낸 세 가지 물건은 시트지 4장, 접이식 빗, 이젤 받침대 고정 나무 핀입니다.
마지막 사진을 찍고, 물건들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시트지입니다.
“이 집에 처음 온 게, 언제더라? 아마도. 작년 늦 봄이었을 거야. 사방에 벚꽃잎이 널브러져 있었거든. 여기 처음 도착한 날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 우리는 편지 봉투에 담긴 채로 이 집에 처음 도착했어.
가슴이 설렜어. 정말 두근두근 거렸지. 이제 봉투에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곧 할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공장에서 시트지로 태어날 때부터,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어. 일단 붙어야 한다. 어딘가에 붙어야 한다. 날마다, 늘 어딘가에 붙는 상상만 했어.
그래, 맞아. 우리는 어딘가에 붙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존재였거든. 그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야. 그런데, 우리가 봉투에서 나오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우리를 보면서, 당신이 무심하게 말했지. 이 시트지 생각했던 거랑 색이 많이 다르네. 아무래도 못쓰겠는데.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았지. 서랍 안에 집어넣고서, 까맣게 잊어버렸지. 관 같이 캄캄한 그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위로했는지 알아? 얘들아, 조금만 참자. 언젠가는 우리가 어딘가에 붙을 날이 올 거야. 꼭 올 거야.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왔어.
그런데 거의 일 년 만에 꺼내서,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차라리 나를 그냥 아무 곳에나 붙여줘.”
시트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접이식 빗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이고, 그만 해라. 시끄럽다. 겨우 1년 정도 참아 놓고,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 난 이렇게 허리를 굽힌 채로 6년 넘게 이 집 필통에 있었어. 자그마치 6년이라고.
이 집에 오기 전에는, 나도 젊고 참 유능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때가 그립네. 나도 한때는 정말 잘 나갔었거든. 전 주인의 오른쪽 주머니가 내 집이나 다름없었어. 하루 종일 허리를 폈다가 접는 걸 몇 번을 했는지 몰라. 전 주인이 꽤 멋쟁이였거든. 어디서든 거울만 보면, 나를 꺼내 들곤 했지. 내 인생의 황금기는 그때였던 것 같아. 정말 정신없이 바빴어. 그렇게 바빴어도, 머리를 빗길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았어.
그런데, 이 집에 오고 나서 내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아? 도착한 날 딱 한 번 내 일을 했을 뿐이야. 신기하게도 이 집주인은 아예 머리를 빗지 않더군. 어떻게 머리를 빗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잊힌 채로 6년 넘게 필통에 숨어 있었다고.
나 아직 멀쩡해. 조금만 운동하면, 예전처럼 다시 팔팔해질 거라고. 멋쟁이 주인만 있으면 된단 말이야.”
그동안 가만히 듣기만 하던, 이젤 받침대 고정 나무 핀이 마침내 입을 엽니다.
“솔직히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떠나고 싶었거든. 그래야 우리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거든.
원래 나는 함께 사는 가족이 있었어. 우리 엄마 이름이 이젤이야. 아빠 이름이 이젤 받침대고, 나랑 똑같이 생긴 형제도 하나 더 있었지.
우리는 길에 버려졌었어. 그런 우리 가족을 처음 발견한 것은 이 집의 안주인이었지. 당신은 반대했지만, 우리를 입양하기를 원했지.
처음에는 우리 가족 모두 사랑받았어. 구석구석 닦고, 하얀 페인트로 칠해 주기도 하고, 거실 한가운데 놓아 두기도 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거실의 구석으로 옮겨지더니, 이내 골방 같은 곳에 방치됐지. 뭐! 그래도 상관없었어. 견딜만했거든. 그때는 가족이 함께 있었으니까.
그런데, 2 년 전에 이사 오면서 나만 가족과 생이별을 했어. 나만 빼고, 모두 버려진 거지. 그 날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차라리 가족과 함께 버려 달라고, 얼마나 소리쳤는지 알아? 그 날 이후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오늘 나를 이렇게 꺼내 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나 이제 가족 만나러 가는 거 맞지?”
시트지는 마지막까지 그 어느 곳에도 붙지 못했습니다.
운이 아주아주 좋다면, 접이식 빗은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젤 받침대 고정 나무 핀이 다시 가족을 만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세 가지 물건이 집에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