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개의 물건이 사라지다
오늘 정리될 사물은 모두 책입니다.
<스칸딕 베케이션><런던 디자인 산책><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가 주인공입니다. 모두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제 품을 떠났습니다.
가장 먼저, <스칸딕 베케이션>의 이야기부터 들어 봅니다.
“제가 충북 청주로 간다는 게 정말인가요? 곧 새 주인을 만나게 되겠군요. 그래도, 당신이랑 헤어지는 것이 많이 아쉽네요. 정말 좋은 주인이었는데 말이죠. 아니라고요? 마지막 순간까지 겸손해할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처음 온 순간부터 알 수 있었어요. 책장에 책이 빼곡했잖아요.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예뻐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혹시, 기억나요?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당신이 북유럽에 한참 빠져 있었던 것 말이에요. 당신. 북유럽에 무척 가고 싶어 했잖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핀란드에 가 보고 싶어 했죠. 핀란드의 디자인을 좋아했던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특히 북유럽의 의자들을 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잖아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호기심 가득했던 당신의 눈. 잊지 못할 거예요.
아직도 당신이 북유럽에 가지 못한 것. 물론 알고 있어요. 당신이 그곳에 갔다면, 분명히 저를 함께 데려갔을 테니까요.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언젠가 당신이 북유럽에 가게 된다면, 저도 일조를 했다는 걸.”
<런던 디자인 산책>도 하소연을 시작합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이게 나의 새 거처라고? 내가 여기 온 게 2012년도였으니까, 벌써 5년이 흘렀네. 5년 동안 책꽂이에 꽂혀 있느라 많이 외로웠어. 왜 외로웠냐고? 당신이 나를 많이 찾지 않았잖아.
처음 여기 온 날부터 한 달 동안, 유난히 힘들었어. 이 집에 있는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으니까. 나하고 같이 온 <스칸딕 베케이션>에만 당신이 빠져 있었으니까. 도대체 런던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나는 왜 데려온 거야? 날마다 그런 생각뿐이었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거의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당신은 나를 꺼내 들었어. 그때서라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줬기에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내내 섭섭할 뻔했다고.
나도 알아. 당신이 런던을 동경할 만큼 내가 훌륭하지는 않았다는 거 말이야. 그래도, 신기해하고, 좋아했잖아. 북유럽만큼은 아니었어도.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런던에 가게 되면, 내가 보여줬던 것들 한 번 떠 올려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새 주인은 런던을 좋아해야 할 텐데."
형제 같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가 동시에 말합니다.
“데려올 때는 평생을 함께 할 것처럼 굴더니, 이렇게 갑자기 떠나보낼 생각을 하다니. 좀 어이가 없네. 당신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 중에서 우리를 유독 좋아했었잖아? 오죽했으면, 날마다 조금씩 나눠서 읽었을까. 그랬던 사람이 왜 이렇게 변한 거야?
경기도 남양주시에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 사람이 우리를 소중히 대해 줄 거라고? 그 사람이 당신만큼 유홍준 교수를 좋아할까? 하긴 관심이 있으니까, 우리를 데려가겠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할게. 당신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한 열정이 예전보다 못해 보여. 우리를 처음 데려왔을 때, 지니고 있었던 초심을 잊지 말라고.
그나저나, 요즘 유홍준 교수의 <안목>을 보고 있던데. 그 책도 다 읽으면 우리처럼 팔 거야?”
네 권의 책은 모두 새 주인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부디 좋은 주인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아직도 책장에는 100여 권의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스물두 가지 물건이 집에서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