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마날로에서 캠핑했던 그 날, 하루 동안에 일어난 반전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 날씨가 정말 환상적이었어.
비가 오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거든.
하와이에는 비가 안 오는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캠핑했던 그 날 단 하루 동안에 놀라운 반전이 벌어졌지
“무슨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전화 해. 금방 데리러 올게.”
Y는 여전히 내가 못 미더운 눈치였다. 텐트도 무사히 자기 자리를 잡았고, 준비해 온 캠핑 도구의 점검도 마쳤다. 더는 걱정할 일이 없는 대도 Y는 캠핑장을 떠나는 걸 계속 머뭇거렸다. 마지못해 돌아서면서, 아내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런 Y의 뒤통수에 대고 나는 당차게 소리쳤다.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3일 뒤에 보자고. 나는 자신만만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옆자리 6번에는 이미 커다란 텐트가 들어서 있었다. 엄마, 아빠, 아이들 셋. 한눈에 보아도 현지인처럼 보이는 가족이 한참 신나게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제대로 캠핑장을 찾아왔구나. 그 가족을 보는 순간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이마날로 비치 캠핑장 7번 사이트. 그곳은 내가 직접 고른 텐트 구역이었다. 텐트 정면에는 왼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들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나무 있는 곳까지 여덟 걸음 정도를 걸어간 뒤에야,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리막길 아래, 숨어 있던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감히 걸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드넓은 백사장이었다. 그 넓디넓은 백사장을 바다는 끊임없이 쓰다듬고 있었다. 오늘, 와이마날로의 바다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절제된 푸른색이었다. 텐트에서 바다까지는 직선거리로 사십 걸음 정도.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다.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기에 딱 좋은 거리다.
와이마날로 캠핑장 예약 사이트에는 모두 19개의 텐트 자리가 있었다. 앞줄 8개, 가운뎃줄 4개, 뒷줄 7개. 예약할 당시에는 7개 자리가 이미 예약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4개의 텐트밖에 보이지 않는다. 개수대는 텐트 뒤쪽으로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고, 화장실 가는 길목에 또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샤워장이 보이지 않는다. 촌사람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불쑥 말을 건네 오신다. 다짜고짜 잘 왔다, 환영한다고 하신다. 할머니의 빠진 앞니 사이로 해맑은 웃음이 흘러나온다.
캠핑장에 도착한 지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하늘의 절반을 가득 메웠던 하얀 구름이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바람도 구름따라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바람이 거칠고 사나워졌다. 구름과 바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곳곳에서 비의 냄새가 난다. ‘하와이에서 한 달 가까이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비 오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설마!’ 예감은 결국 틀렸다. 오후 늦게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 무렵이 되자 본격적으로 굵어지기 시작했다. 굵어진 빗방울에 맞춰서 바람도 점점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씩 심란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캠핑 첫날인데.
자정이 가까워지자, 비와 바람은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전의 비바람은 한낱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할 태세였다.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가 입김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내뱉는 것 같았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바람이 계속 비명을 지른다. 흡사 거대한 휘파람 소리 같다. 바람이 텐트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텐트가 날아가는 건 아닐까? 슬슬 걱정될 무렵, 텐트 안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펄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걸 보니, 아마도 방수천이 바람에 벗겨진 듯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밤새도록 비가 샐 것이다. 밖에 나가 보수를 해야 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텐트 밖으로 나선다. 나서자마자 바람이 귀싸대기를 힘차게 때리기 시작한다. 방수천이 패배자의 깃발처럼 펄럭거린다. 붙잡고, 애원도 하고, 다시 묶고,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힘겹게 보수를 마치고 텐트에 다시 숨었는데 눕자마자, 정체불명의 물체가 바람에 구르기 시작한다. 갑자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도 들려온다. 차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도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옆 텐트의 부부가 싸우는 소리였다. 바람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서로가 서로에게 격렬한 욕을 퍼붓는다. 아내는 위험하니 당장 집에 가겠다고 하는 것 같았고,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 집에 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설득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각자 엄마 아빠 편으로 나뉘어서 악착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도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믿기지 않았다. 하와이에 한 달 가까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이런 날씨를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캠핑 첫날에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갑자기 거짓말처럼, 옆집 가족이 잠잠해졌다. 비는 잠시 그쳤다가 다시 폭우로 변했고, 어디선가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캠핑이 무섭다고 했던 H도, 캠핑은 재미있는 거라고 했던 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둘이서 꼭 껴안고서, 악몽 같은 이 밤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H는 날이 밝자마자 제일 먼저 Y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공포에 질린 목소리였다. 나는 H를 말릴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도 우리는 무사히 살아있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텐트의 지퍼를 내린다. 비는 좀 잦아들기는 했지만, 바람은 아직도 볼 일이 남아 있나 보다. 캠핑장 주변을 아직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 텐트 옆자리는 정갈하게 비어 있었다. 너무 깨끗해 보여서, 간밤에 일어난 일들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단란하고 행복해 보였던 가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깨끗이 증발해 버렸다. 19개의 텐트 자리에 남아 있는 텐트는 우리 텐트를 포함해서 단 두 개뿐이었다. 그 악천후에도 살려고 도망을 쳤구나.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차가 없어서 도망 못 간 게 아닐까? 내가 텐트장 밖을 살피고 있는 사이, H는 Y에게 전화를 했다.
“빨리 와서 우리 좀 구해줘!”
짐을 말끔히 정리하고, 젖은 텐트를 힘겹게 철거하려는 순간, 놀랍게도 비가 그쳤다. 절대 멈출 것 같지 않던 비가 기가 막힌 순간에 멎었다. 갑자기 억울한 기분이 든다. 이대로 캠핑을 마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바다를 향해 달렸다. 미친 사람처럼 바다로 뛰어들었다. H에게 어서 바다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H는 그런 나의 모습을 잠깐 지켜보는 것 같더니, 조용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Y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날씨로 바뀌어져 있었다. 밤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이 잘 짜인 각본 같았다.
“그럼, 캠핑은 끝난 거야?” Y가 H에게 물었다.
“응" H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지막 짐을 싣고 있는데, 어제 만났던 할머니가 H에게 묻는다.
“해 떴는데 어디 가?”
우리의 첫 번째 하와이 캠핑은 끝났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H에게 물었다.
“아까 바다에 들어오라고 내가 그렇게 불렀는데, 왜 모른 척했어?”
“짐 때문에 그랬어. 짐 지키느라고.”
“계속 뒤쪽만 쳐다보고 있던데?”
“앗! 봤어? 음······사실은 말이야. 나도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수영복 갈아입으려고 텐트에 막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낯선 남자랑 여자랑 걸어오는 거야. 아주 천천히 , 느린 걸음으로. 그 두 사람이 개수대에 서서 갑자기 몸을 씻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놀라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왜? 무슨 일 있었는데? ”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소중한 곳을 너무 정성스럽게 씻기 시작한 거야. 나하고 눈이 딱 마주쳤는데도, 자신들의 몸을 씻는 걸 멈추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쳐다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더라고. 나도 얼떨결에 인사는 했는데.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어. 내가 갑자기 시선을 회피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저 사람들이 씻는 데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와이가 원래 이런 곳이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두 사람 분위기는 영락없이 방금 사랑을 나눈 커플 같았어. 결국에는 두 사람이 몸을 다 씻을 때까지 보고 있었지. ”
“바다에 못 들어올 만 이유가 충분했네.”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대답하면서, H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 H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지만, 충격을 꽤 받은 듯했다. H가 가끔씩 멍한 표정을 지을 때면, 또 그때를 회상하는군 하면서 일부러 모른 척하곤 했다. 내가 똑같은 경험을 했어도, H는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 날은 내가 하와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다에 들어간 날이었다. 사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H는 자신이 수영을 정말 잘한다고 틈만 나면 자랑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H가 바다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H는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사기 위해 1주일 동안 시내를 돌아다녔는데도 말이다. 나는 H의 수영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