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와이마날로 캠핑장 화장실에 사는 사람들
당신은 그냥 자기 할 일을 한 것뿐이겠지만,
그 사람들은 기분이 정말 더러웠을 거야
와이마날로 캠핑장에 있던 그 날 저녁.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H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 야심한 밤에 H를 혼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을 추스르고, 기꺼이 보디가드가 되어 본다. 무사히 볼 일을 마치고 나온 H. 그런데, 들어갈 때와 달리 살짝 겁에 질려 있었다.
“나 너무 무서웠어. 화장실 안에 사람들이 서 있었더라고. 몸집이 전부 내 두 배는 되는 여자들이 어둠 속에서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숨이 딱 멎는 거 있지. 늦은 시간인데 화장실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가만히 살펴보니까, 어린아이도 있더라고. 그런데, 놀라웠던 건 그중에 한 명은 남자였다는 거였어. 왜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있는 거지? 그냥 다시 나갈까? 뒤돌아서 나가도 괜찮을까? 저 사람들이 혹시 기분 나쁘다고 해코지 하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남자가 나한테 손짓을 하는 거야. 가까이 오라고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소리를 질러야 하나? 일단 뛰어 나가서 당신을 불러야 하나? 그냥 시키는 대로 순순히 가까이 가야 하나? 머리 속에 수 만 가지 고민이 막 샘솟는 거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얼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는 데. 그 남자가 다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무서워하지 말라고, 괜찮아. 괜찮아. 들어가서 볼일 봐. 물론 영어로 말이야. 그래도 내가 의심을 안 풀고 가만히 서 있으니까, 우리 나쁜 사람 아냐 그러더라고. 그러고 나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씩 웃더라고. 그제야 아! 이 사람들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나쁜 사람들이면 저런 말을 해줄 이유가 없지. 저렇게 웃을 수 없지. 다행이다. 이젠 살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휴! 다행이다.”
“그러고 나서, 비어 있는 화장실 칸으로 천천히 걸어갔어. 최대한 천천히. 그 사람들한테 웃는 얼굴을 일부러 보여 주면서. 나도 당신들이 착한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뭐 그런 의미였지. 내가 겁먹어서 그냥 나가면 어쨌든 분위기가 더 험악해질 테니까. 그리고나서, 앉아서 볼일을 보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소리를 막 질러서 당신이 날 구하러 들어왔어도, 소용없었겠다는 생각. 문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절대로 못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당신이 정말 크고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하와이에서는 안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여자들하고 나를 비교해? 사람을 뭘로 보고!” 순간적으로 발끈해서 대답은 호기롭게 했지만, 왠지 확신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에게 있었던 일 때문이다. 사실은, H가 화장실에 가기 전에 혼자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물론, 남자 화장실이다.
나는 H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은 말이야. 내가 당신보다 먼저 화장실 갔다 왔어. 아까 텐트 보수하면서, 몰래 다녀왔거든. 뒤가 너무 급해가지고 말이야. 근데, 화장실 들어서자마자 건장한 남자 3명이 보이더라고. 자기가 좀 전에 여자 화장실에서 겪은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다가, 내가 들어가니까 갑자기 말을 딱 멈추는 거 있지. 뭐지? 이 사람들은? 그냥 모른 척하고 들어가도 정말 괜찮을까? 곁눈질로 보니까 덩치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그냥 조용히 볼일만 보고 나갈 생각으로 좌변기 있는 칸으로 조용히 들어갔지. 그런데 느낌이 묘하더라고. 자꾸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냥 투명인간처럼 볼일을 보기 시작했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 안이 너무 조용한 거야. 숨소리도 다 들릴 정도로 고요했어.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일을 보면, 굉장히 어색할 것 같더라고. 떨어지는 소리가 다 들릴 거 아냐? 그래서, 일단 참았지. 얼마나 참았을까? 걔들도 다시 쑤군쑤군 이야기를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마음놓고 싸기 시작했어.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욕을 하기 시작하는 거야. 싸움났구나. 지들끼리 싸우는 건가? 나갈 때 조심해야겠네."
“와! 분위기 험악했겠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볼일을 볼 수 있었단 말이야?”
“퍽 어쩌고 저쩌고 퍽 엄청나게 욕을 해대는 거야. 처음에는 그 사람들 욕하는 게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줄 알았어. 나는 내 할 일만 열심히 했지.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싸한 거야. 왜 그럴까? 왜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걸까? 영어로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서 그런 걸까? 그런데, 갑자기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는데, 집중해서 듣다 보니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더라고. 내가 볼일 보는 소리하고 욕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나의 변이 떨어지고 나면, 욕을 하는 거였지. 그게 정말 맞는지 확인하려고 일부러 타이밍을 조절해 보았거든. 딱딱 맞아떨어지더라고. 도대체 왜 내가 볼일 보는 걸 가지고 욕을 하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어.”
“진짜 걱정해야 할 건 그게 아니었을 것 같은데?”
“뭐, 어쨌든. 볼일을 다 보고, 문을 열고 나오니까. 그 사람들 모두 다 코를 막고 있더라고.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좀 됐어. 아!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냄새 때문에 그렇게 욕을 한 거였구나.”
“하하하! 하긴 당신 변 냄새가 좀 강하긴 해.”
“휴! 그나마 다 싸고 나온 게 다행이지. 나올 때는 분위기가 진짜 섬뜩하더라고. 그래도, 내가 나오는 순간에 코는 막고 있었는데도 막상 대놓고 욕은 안 하던데.”
“그런데, 그 사람들 놀러 온 사람들 아닌 것 같지? 아무리 봐도 캠핑 온 사람들 같지 않았어.”
“응. 맞아. 확실히 놀러 온 분위기가 아니었어. 뭐랄까? 노숙자 느낌이 난다고 할까?”
“그 사람들 이 근방에서 사는 사람들 같아. 더군다나 오늘 같은 날씨에는 어디 피할 데도 없었을 거 아냐?”
“아! 그래서 비바람 피하려고 화장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거였구나.”
“그런데, 낯선 동양인이 들어와서 갑자기 냄새를 풍겼으니. 나 같아도 욕 나왔겠다.”
“그런가? 난 단지 화장실이 있어서 내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당신은 그냥 자기 할 일을 한 것뿐이겠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누군가 자기 집에 불쑥 침입해서 똥을 싼 거잖아. 무지막지한 냄새 풍겨가면서. 기분이 정말 더러웠을 거야”
나에게는 그곳이 그냥 화장실에 불과했지만, 그들에게는 화장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그곳이 그들의 보금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악천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피소였을 것이다. 주변에 달리 갈 곳이 없었으니까. 그 모든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화장실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비바람을 맞으면서 똥을 싸는 것이 훨씬 속이 편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바람에 밀려서 갑자기 내 똥에 주저앉는 일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그 시간 이후로, H도 나도 다시는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