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정리, 26일 차

애정 없는 물건도 막상 버리려고 하니 아깝다

by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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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꺼내 놓은 게 오늘 버릴 물건들이야?

- 응


플라스틱 통이랑, 더러운 바구니 하나. 그런데 이건 뭐야?

- 고리


고리? 이건 원래 어디에 있던 거야?

- 옆에 있는 더러운 바구니에 달려 있던 거야. 살 때는 두 개였는데, 이사하면서 하나가 사라져 버렸어.


살 때 바구니랑 고리랑 원래 같이 붙어 있던 거야? 어! 그러면, 바구니랑 합쳐서 물건 하나로 봐야 되는 거 아닌가?

- 그건 고리가 두 개 다 있을 때 이야기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 원래 고리 두 개가 다 있을 때는 바구니에 달려 있었으니까 하나의 물체로 보는 게 맞아. 그때는 분명히 고리 달린 바구니였으니까. 그런데, 고리 하나가 사라지고 나서부터는 바구니에 고리를 달아서 쓸 수가 없잖아. 바구니는 바구니 단독으로 쓰였고, 고리는 고리대로 각각 분리됐어. 그때부터는 서로 독립된 물건이 된 거지. 바구니는 바구니로. 고리는 고리로. 그러니까 하나가 아니라 둘로 보는 게 맞지 않아?


뭔가 이상하긴 한데, 묘하게 설득력은 있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본래의 기능을 잃은 물건은 각각 독립된 개체로 봐야 한다는 논리잖아? 물건에 원래 주어진 기능보다 우리가 어떻게 물건을 사용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지?

-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고, 결국에는 내가 보는 눈이 더 중요하다는 거지. 뭐.


그런데 이 플라스틱 통은 아직 쓸만한 것 같은데? 손세탁할 때 통이 깊어서, 당신도 좋아했잖아.

- 그 통. 깨져서 물이 세.


아! 그래? 그러면 깨진 데 수리해 볼까?

- 수리 안 해도 돼. 정말 필요하면 다시 새로 사면 되니까. 새로 사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지만.


더러운 바구니는 뭐가 문제야? 잘 닦아서 쓰면 될 것 같은데?

- 그것도 앞부분이 깨졌어


이건 정말 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봉합만 잘 하면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몰라.

- 그 물건들 모두 당신은 무관심했던 것들이야. 그런데 왜 막상 버리려고 하니까, 고치신다고 난리를 피우실까? 고민하지 그만 하시고, 제발 그냥 버려 주세요. 네. 그리고, 수리할 시간에 딴 일 하세요. 더 창조적인 일 하시라고요.




어쩌면, 아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잘 고치면 더 쓸 수 있는 물건들도 막상 버리려고 하니까, 아까워 보인다. 그런데, 막상 고쳐 쓰려면 필요한 재료들을 또 새로 사야 한다. 재료들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이 들지도 모른다. 고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그럴 바에는 새로 사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 막상 고장 났어도 버릴 수 있을까? 애착이 많이 갔던 물건이 부서졌어도 그냥 버릴 수 있을까?


깨진 플라스틱 통, 깨진 바구니, 짝을 잃은 고리 한 개를 버린다. 눈꼽만큼도 애정도 없는 물건 세 개를 버린다. 다행히도 세 개의 물건 모두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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