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사물 정리 한 달을 정리해 보다
이게 오늘 정리할 물건이야?
- 응. 책 2 권하고, 카드 팸플릿.
<내가 찍은 DSLR 사진으로 돈 벌기> 이 책은 못 보던 책인데?
- 구석에 꽂혀 있어서 못 봤을 거야.
이 책 다 읽었어?
- 당연하지.
나는 당신이 사진으로 돈 번 기억이 없는데?
- 책을 본다고, 책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러면 누구나 다 부자 되게?
농협카드 팸플릿은 왜 아직도 가지고 있었던 거야?
- 카드 혜택이 뭔지 정확히 몰라서 아직까지 갖고 있었어.
가지고 있은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이제는 카드 혜택이 뭔지 알아?
- 솔직히 아직도 잘 몰라.
그럼 팸플릿은 왜 가지고 있던 거야?
- 그러니까, 버리는 거지.
<세계 디자인 도시> 이 책은 당신이 아끼던 책 같은데?
- 그랬었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 책을 너무 아껴서 세계 디자인 도시에 아직도 못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 책에 나와있는 도시에 정말 가려면 그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래서 이제 그만 그 책을 놓아주려고 해.
오늘로 사물 정리를 시작한 지 딱 한 달째네. 어때? 잘하고 있는 것 같아?
- 벌써 한 달이나 됐네. 당시도 알다시피, 처음 며칠 동안은 무척 힘들었잖아. 버릴까 말까 갈팡질팡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런데 적응기간이 끝나고 나니까, 이제는 그럭저럭 할만한 것 같아. 몸에 좀 익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날마다 밥 먹는 기분하고 비슷해. 안 하면, 좀이 쑤시니까.
오늘까지 정리된 사물이 90개인가?
- 오늘까지 정확히 89개야.
하루 3개씩 한 달이면 90개가 돼야 하는 거 아냐?
- 30일 중에서 4개 정리한 날이 하루 있었고, 1개만 정리한 날이 하루 있어서 그래. 우리가 하루 3개라는 규칙을 세우기는 했지만, 규칙 자체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리듬을 계속 유지하고, 체계가 잘 잡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일단은 빼먹지 않고 한 달을 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어때? 집이 예전하고 좀 달라진 것 같아?
- 집이 달라질 정도로 사물이 줄은 것 같지은 않아. 집 안이 크게 달라졌다는 생각은 안 드니까.
하루 3개씩 버리는 게 이제는 좀 답답하지 않아?
-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 수량을 대폭 늘릴 생각도 안 한 게 아냐. 처음부터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효과를 원했다면,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겠지. 그랬다면, 날 잡아서 한꺼번에 과감히 정리를 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테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하고 이유는 뭘까?
-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언제부턴가 나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예를 들자면?
- 현재 우리 집에 있는 물건 대부분은 우리가 구입한 것들이 다수잖아. 물론 만든 것도 있고, 받은 것도 있고, 주워 온 것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몰래 다른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것은 없다고 봐야지. 이 많은 물건들이 우리 집에 들어올 때는 한꺼번에 들어온 게 아니야.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쳐서 지금 우리랑 같이 살게 된 거지. 그래서 물건마다 다 사연과 이유가 있는 거고.
이런 물건을 정리하는데, 며칠 만에 몇 시간만에 할 수 있을까? 설사 할 수 있다고 해고, 그건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거지. 정리할 때 아무런 감정도, 죄책감도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 물건은 왜 산 거지? 이건 왜 안 쓰게 된 걸까? 이 물건을 계속 가지고 있을 가치가 있을까? 이게 필요한 사람이 혹시 있지 않을까? 이 물건에는 이런 추억이 있었구나. 이런 생각들과 감정들도 물건과 같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야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 아냐?
이런 과정을 겪지 않고서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의 최종적인 지향점이 미니멀리스트가 아니긴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책도 많이 봤잖아?
- 책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나는 미니멀리스트들의 삶이 불편한 느낌이 좀 들더라고. 강박적이라고나 할까? 이 정도는 좀 지나친 것 아닌가? 어쩌면 극단적인 자기만족 아닌가? 물건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은 아닌가? 규칙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이런 많은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스트들의 도전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일단은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소비지향적인 삶에 대해서 뒤돌아보게 만드니까. 물질의 풍요로움이 삶의 풍요로움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뭐, 누구한테나 스스로에게 편한 기준이 있는 거잖아.
- 그렇긴 하지. 정리나 분류도 자기한테 맞는 기준이 있는 거니까. 내 눈에는 무질서해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나름의 질서가 존재할 수도 있는 거고.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해 보여도, 타인의 눈에는 불편해 보일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자기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문제가 되겠지?
- 그렇게 되면 그건 폭력이 되겠지. 누구나 각자만의 개성과 규칙이 있는 것이니까. 자기와 다른 방식,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강요하면 안 되는 거잖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이런 행위는 용납되면 안 되겠지.
지금까지 느낀 건 뭐야?
- 내가 정말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었구나. 내가 정말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었구나.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참 많이도 가지고 있었구나. 어쩌면 우리 인류는 지구라는 환경에 가장 큰 원죄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가끔 들어.
아직도 정리할 물건이 많이 남았지?
- 그럼.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