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정리, 31일 차

공짜라고 덥석 받아오지 좀 말라고!

by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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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 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 난 분명히 튀김용 접시인데, 당신이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파스타 접시라고 우겼던 거 말이야? 옆에 있던 당신의 아내가 이거 튀김용 접시인데라고 다시 한번 일깨워줬을 때, 당신은 이렇게 말했지. 그러면 가끔씩 튀김도 담으면 되겠네. 튀김용 접시로 태어난 나한테는 무척 모욕적인 말이었지. 하지만 나는 꾹 참았어. 어쩌면 당신들이 나를 데려갈 주인일지도 모르니까. 드디어 나를 아껴줄 주인이 나타났다는 기쁨이 더 컸으니까.


당신들이 좋은 주인이기를 진심으로 바랬지. 하지만 이 집에 온 뒤, 내 안에 처음으로 담긴 음식은 파스타였어. 당신의 말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지. 아! 나는 이제 평생 파스타 접시로 살겠구나. 그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단념하고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었지.

그런데 놀랍게도 내 안에 담긴 두 번째 음식은 파스타가 아니었어. 돈가스였지. 기름이 좔좔 흐르는 돈가스였어. 나는 너무 기뻤어. 돈가스도 어쨌든 튀김은 튀김이니까. 드디어 내 진가를 알아주는구나. 기름범벅이 된 그 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이었지.


기름기가 많았던 나를 설거지 하던 당신이 나를 놓쳐 버렸거든. 당신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시간이 얼마나 느리게 흘러갔는지 몰라. 그동안 살아왔던 내 삶이 주마등처럼 흘러 가더군. 흙에서 태어나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지.


떨어지는 나를 당신이 엉겁결에 잡아챘잖아.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어. 당신의 아내는 그런 나를 위험하다고 당장 버리라고 했지만, 당신은 조각을 다시 붙여서 쓰자고 했지. 그리고 실제로 당신은 접착제로 나를 치료해 주었어. 고마웠어.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 이렇게 나를 아끼는 주인이라면, 평생을 같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며칠 앓기는 했지만, 나는 금세 나아졌어. 나는 내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건강하고,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지. 다치기 전에는 뻔질나게 나를 찾았었는데, 다치고 나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거든. 이상했어.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 이유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됐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파스타 접시가 집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어. 품위라고는 하나도 없는, 새하얗고 동그란 싸구려 접시였어. 저렴한 가격에 접시를 샀다고 좋아했던 당신의 아내, 이 접시는 싸구려라서 깨져도 괜찮다고 맞장구치던 당신! 깨지면 또 사면된다고 말하던 당신들! 그날 밤, 당신들이 얼마나 천박해 보였는지 알아? 접시를 대하는 당신들의 진심을 알게 된 후, 내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는지 알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빨리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몰라주는 이런 집에서는 이제 단 한순간도 머물고 싶지 않아.”


접시 옆에 있던, 린스도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공짜라고 좋다고 받아와 놓고서, 취향에 안 맞으니 이제는 버리시겠다? 그러게, 애초에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지. 자기 취향에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면서, 공짜라고 덥석 받아 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 맞을 거 같으면, 그 자리에서 정중히 거절했어야지. 안 그래?

더군다나 나만 달랑 받아 온 것도 아니었잖아? 내 친구들을 욕심껏, 자그마치 여섯 병이나 챙겼잖아. 그때 나랑 같이 온 친구들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잖아. 당신들이 쓰기 곤란하다고 남에게 떠 넘기는 게 좋은 일 같아? 그게 민폐란 것도 몰라? 당신들 취향에도 안 맞는 것을 남한테까지 떠밀면 어떻게 해?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만의 취향이 있는데 말이야. 나 같은 제품들은 개인별 선호도가 확실히 갈린다는 거 알잖아?


제발 부탁인데 말이야.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공짜라고 덥석덥석 받아 오지 좀 말라고. 결국 쓰지도 않을 거면서 제발 욕심부터 부리지 좀 말란 말이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면, 아무리 공짜로 준다고 해도 정중히 거절하는 마음가짐 좀 가지란 말이야.”


마지막으로, 미니 치약이 묻습니다.


“나 아직 치약 남았는데, 왜 버리는 거야? 뭐? 뭐?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유통기한 다 지날 동안 안 쓰고 뭐한 거야? 뭐라고? 치약에도 유통기한이 있는지 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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