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정리, 32일 차

우리는 결국 다시 돌아올 거야. 다른 모습으로.

by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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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다 마친 칫솔이 말합니다.


“이 집주인 어딘가 이상하단 말이야. 비싼 칫솔은 왜 좋은 품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왜 저렴한 칫솔은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 같은 경우만 해도 그래. 내가 이 집에 오기 전에, 원래 있었던 칫솔들은 내가 보기에도 꽤 쓸만한 녀석들이었거든. 모두 나보다 더 저렴하기는 했지만, 나하고 품질 차이가 거의 없었어. 우리 같은 제품들이 소모품인 것을 감안한다면, 녀석들이 오히려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가성비로만 따지면 나는 절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으니까.


나를 구입했던 주인도 나를 사용하고 나서부터 불만스러워했어. 나하고, 이전에 쓰던 칫솔 하고 비교해서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지. 가격이 비싸다고, 좋은 칫솔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돼.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전에 쓰던 칫솔에 큰 불만이 없었는데도, 왜 돈을 더 주고 나를 구입한 걸까? 정말로 내가 더 비싼 칫솔이니까, 더 좋을 거라고 추측한 걸까? 가격이 비싸면, 왜 당연히 품질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가격하고 성능, 품질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말이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일어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 그랬더니,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야.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들의 가치를 오직 가격으로만 따지니까 그런 게 아닐까? 가격이 모든 잣대의 기준이 되면서부터 생긴 버릇이 아닐까?


어쨌든 지금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 집주인들 이제 다시는 나 같은 칫솔은 거들떠보지 않을 거라는 거지. 비싸다고 꼭 좋은 칫솔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우리 칫솔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칫솔의 뒤를 이어, 극세사 청소 장갑이 고백합니다.


“나는 이 집에 사은품으로 들어왔어. 청소용품을 샀는데, 같이 섞여 들어온 거지.

나를 처음 본 순간, 무척 신기해했지. 당연한 일이야. 극세사로 된 엄지 청소 장갑은 처음 봤을 테니까. 며칠 동안은 신나게 일했어. 그런데, 쓰면 쓸수록 내가 불편하다는 거야. 손에 안 익어서 오히려 불편하다, 옛날에 쓰던 걸레가 더 편하다, 손에 끼니까 답답하다, 장갑 모양으로 생겨서 세탁하기 힘들다. 뭐 별의별 불만이 다 쏟아져 나오더라고.

이 시대의 획기적인 발명품인 나의 진가를 못 알아 본거지. 며칠 사용하더니, 나는 완전히 잊혔어. 창고 구석에 처박혀서, 먼지랑 노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지.


그런데 오늘, 모처럼만에 나를 다시 꺼내길래, 뒤늦게서야 나의 진면목을 깨달은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괜찮아! 괜찮아! 섭섭하지 않아. 솔직히 당신들이 불쌍하거든. 이 시대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나 같은 발명품의 진가를 끝내 못 알아본 당신들이 말이야. 내가 이 집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때서야 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거야.”


마지막으로 유리 양념통이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쁜 양념통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어. 집에는 이미 큰 양념통이 많았지만, 작은 양념통을 갖고 싶었던 거지. 그러다가, 4개를 묶음으로 판매하는 유리병을 찾았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작고 귀여워서 구입하기로 결정했지. 가격도 저렴했고, 더 이상 발품 파는 것도 귀찮고 해서 그냥 사고 말았던 거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큰 양념통에서 양념을 덜어서 작고 귀여운 양념통으로 옮기기 시작했지. 한 병에는 소금, 한 병에는 설탕, 한 병에는 고춧가루, 마지막 병에는 멸치가루를 넣었어. 그러고 나서, 귀엽고 예쁜 양념통이라고 한동안 좋아해 했지.


그런데 양념을 처음 사용하던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거야. 평소에 양념을 사용할 때 숟가락으로 계량을 했는데, 숟가락이 양념통에 들어가지 않았던 거지. 말은 못 하여도, 무척 당황스러웠을 거야. 고민 끝에, 결국에는 원래 쓰던 큰 양념통에서 숟가락으로 양념을 퍼서 사용했기로 했어. 그 뒤부터는, 작은 티스푼을 이용해서, 작은 양념통의 양념들을 쓰는 걸 몇 번 시도하기도 했어. 하지만, 불편하긴 매 한 가지였지.

결국, 작은 양념통들은 눈으로만 감상하는 양념통으로 전락하고 말았어. 그리고 얼마 못 가서, 작은 양념통의 양념들은 깨끗이 비워지고 말았지. 몇몇 통들은 운 좋게도 재활용되기도 했어. 대신 양념이 아닌 다른 것들이 담겨서 사용되었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 아주 오랜 시간이 말이야. 그리고 오늘, 그중에 하나가 마침내 이렇게 등장하게 되었군. 다시 양념통으로 쓰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려지기 위해서 말이야.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어. 물건을 구입할 때, 이 점도 꼭 같이 생각해 줬으면 해. 가격과 쓸모 여부만 생각하지 말고, 물건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상상해 줬으면 좋겠어. 당신은 그냥 쓰레기봉투에 버리면 끝일지 몰라도,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지 않거든.

우리는 돌고 돌아서 결국 당신들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썩지도 못하고, 분해되지도 못하고, 사라지지도 못하는 것들은 결국, 당신의 몸 어딘가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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