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다른 캔커피의 고백
오늘 정리되는 사물 세 가지입니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바구니 하나, 짝을 잃은 빨간색 뚜껑 하나, 일본에서 구입한 빈 캔커피 하나가 그 주인공입니다.
바구니에는 잡다한 것들이 오랫동안 담겨 있었습니다. 본래 바구니의 용도를 잃어버린 지 꽤 오래된 채로 말입니다. 며칠에 걸쳐서 아내는 그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을 비우고 나더니, 이제 이 바구니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버리기로 마음먹으면서, 오래전 충동적으로 바구니를 구입했던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습니다.
빨간색 플라스틱 뚜껑은 몸체를 잃어버린 채, 한동안 집 안을 떠돌아다녔습니다. 드디어 저희 집을 떠나게 되었군요. 잃어버린 몸을 부디 찾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제 더 이상 커피가 들어있지 않은 캔커피는 몇 달 전 일본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일본 여행의 전리품이라고나 할까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고 하니, 한 번 들어 보세요.
“내 고향은 오사카 도심에 있는 편의점이야. 편의점 냉장고 안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우리 일이지. 자기를 데려갈 사람이 빨리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줄 맞춰 서 있는 게 우리의 숙명이라고. 나는 지금의 주인덕분에 그 지긋지긋한 기다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그때 나랑 같이 진열되어 있던 친구들은 다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몰라.
모르긴 몰라도, 아마 대부분이 고향 인근에 버려졌을 거야. 우리를 데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간혹 다른 지역 사람들이 사가기도 하지만, 어쨌든 버려지는 곳은 마찬가지였지. 대부분 오사카 도심 안에 버려졌으니까.
그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엄청 호강한 게 맞아. 살았던 지역을 벗어나서 다른 지역까지 흘러 왔으니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보고, 한국이란 나라에까지 와 봤으니, 더 이상 소원이 없어.
내가 한국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건, 한국에도 나하고 닮은 녀석들이 많이 있다는 거였어. 고향에서 꽤 멀리 떠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 정도였어. 내가 마주했던 그 녀석들 모두 다, 크기는 물론이고, 재질, 외모까지도 나하고 너무 흡사했으니까. 그 무리 속에 내가 섞여 있으면, 그 누구라도 아마 나를 쉽게 찾아내지 못했을거야.
그런데, 그 녀석들하고 나하고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었어. 겉은 비슷해 보였을지 몰라도, 속이 달랐거든.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달랐어. 맛의 차이는 둘째 치고, 너무 싱겁다고나 할까? 심심하다고나 할까? 어쨌든 한국의 캔커피는 보기와 다르게 독하지 않더라고. 뭐 뒤집어서 다르게 본다면, 내가 너무 독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솔직히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일본에서 온 내가 너무 독한 건지, 한국에 있는 녀석들이 너무 연한 건지는 말이야. 그건 상대적인 거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이 일본 사람하고 한국 사람의 차이점 같기도 해. 일본 사람하고 한국 사람도 겉으로 보기에는 꽤 비슷해 보이잖아? 그런데, 겉은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속은 많이 다르거든. 둘중에 누가 더 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나는 이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거야. 지금 여기서 버려지면, 한국에서 재활용될 거고, 운이 좋다면 다시 커피캔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한국의 어느 마트에서 또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테고. 조만간 나를 데려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사람은 아마도 꿈에도 모를 거야. 원래 내가 일본 오사카에서 건너온 커피캔이었다는 걸 말이지. 내 안에 얼마나 지독한 커피가 담겨있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