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필심을 팔지 않는 볼펜의 비밀을 깨닫다
“나는 블랙 비니 모자야. 이 집에는 나처럼 생긴 모자가 나 말고도 2개나 더 있어. 하나는 나랑 같은 색인데 나보다 더 빈티지하고, 다른 하나는 그레이 색상에 나보다 더 크지.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한 모자는 나야. 내가 지금껏 주인 머리에 써진 적이 딱 두 번 있었는데, 두 번다 오래 버티지 못했어. 나를 쓰기만 하면 답답하다고 했거든. 나를 쓰면 손오공이 된 기분이 든다나? 물론, 모자 셋 중에서 내가 가장 사이즈가 작기는 해. 그리고, 그중에 나만 유일하게 돈 주고 구입한 모자가 아니었어.
이제야 고백하는 건데, 주인 머리에 써질 때마다 나도 무척 힘들었거든. 내가 뭐 고탄력 스타킹도 아니고 말이야. 이대로 버려지면 어디로 가게 될지 나도 모르겠지만, 다음번에는 제발 머리 사이즈 좀 작은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어.”
거의 쓴 적이 없는 비니 모자를 드디어 정리했다. 아직까지 이 비니 모자가 집에 남아있던 이유는 선물 받은 모자였기 때문이다. 아마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내 머리 사이즈를 너무 과소평가했거나, 머리 사이즈에 무심했거나.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아이폰 4 케이스를 정리했다. 내가 쓸려고 직접 구입했던 케이스도 아니었고, 앞으로 쓸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버리려니 아깝다. 죄책감까지 느껴진다. 새 제품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 펜은 왜 리필심을 안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리필심만 갈아 끼면, 멀쩡한 펜으로 변신할 텐데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필심을 찾아본다. 그러다가 우연히 리필심을 파는 다른 종류의 펜들을 보게 되었다. 그 펜들의 리필심 가격을 막상 보고 나니, 내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깨달았다. 리필심 가격과 펜 가격이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