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몸에는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녀는 손바느질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 집 안에 재봉틀이 있는데도 쓰는 걸 거의 못 봤거든. 더군다나, 그 재봉틀은 그냥 평범한 재봉틀도 아닌데 말이야. 손바느질하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녀의 남편이 전기 재봉틀을 다 선물했을까!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어. 그는 손바느질을 단순한 가사노동으로만 생각했던 거야. 그 재봉틀을 처음 보던 날, 그녀의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 줄 알아? 고맙기도 하면서, 떨떠름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 아무튼 무지 복잡한 심정의 표정이었다고.
재봉틀은 어떻게 됐냐고? 호기심을 못 참은 그녀가, 재봉틀을 가동 하긴 했지. 그녀가 어렸을 때, 보았던 재봉틀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물론 그녀가 보았던 추억의 재봉틀은 전기 재봉틀이 아니라, 수동식 재봉틀이었어. 전기 재봉틀만큼 빠르지 않았지.
손바느질의 속도에 적응되어 있던 그녀에게 전기 재봉틀의 속도는 공포 그 자체였어. 아무리 천천히 하려고 해도, 무서운 속도로 바늘이 움직였지. 재봉틀은 바늘이 몇 차례 부러지기도 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까지 나버리고 말았지.
재봉틀은 결국 수리센터를 다녀와서야, 이전 모습을 되찾았지. 그런데, 그 후로 그녀는 재봉틀을 의도적으로 멀리 하는 것 같았어. 남편에게는 손바느질이 더 편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재봉틀이 무서웠던 것 같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 거지.
나도 그녀의 손바느질로 완성된 작품이야. 내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딱히 어디에 쓰려고 만든 것 같지는 않아. 그녀는 바느질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어. 도를 닦는 기분이라고 말했어. 바느질 속도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바느질의 목적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결과물 같은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지.
하지만, 바느질에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 바느질을 하다가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실을 다시 다 풀기도 했어. 마치 자신의 시간을 천천히 다시 되감는 듯한 모습이었지. 나를 다 만들어 놓고 나서, 이걸 어디다 쓰면 좋을까 하고 묻기도 했지. 나는 그렇게 태어났던 거야.
혹시 버림받아서 섭섭하거나 속상하지 않냐고? 전혀. 아니야. 나는 그저 바느질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지. 어쨌든 바느질은 무사히 끝났고, 조만간 새로운 바느질이 시작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 아마도, 재봉틀은 곧 이 집을 떠나게 될 거야. 내가 떠나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손바느질로 마무리한 작품(?)이 드디어 완성되던 날, 아내가 내게 물었다.
“이거 어디에 쓰면 좋을까?”
“글쎄?”
어디에 쓸지도 정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아내가 가끔은 부럽다. 어쩌면 아내의 몸 안에는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의 작품(?)의 쓰임새를 찾을 수 없었다. 집 안 어디에서도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한 예술품은 결국 버려졌다. 공들여 만든 자신의 작품을 버릴 수 있는 아내의 용기가 부럽다. 아내의 몸 안에는 틀림없이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 사용한 펜이 버젓이 필통에 꽂혀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펜도 필통에 꽂혀 있었다. 두 개 다 버렸다. 아직도 필통에는 10개의 펜이 남았다. 아무리 세어봐도 아직도 펜이 너무 많아 보인다. 펜이 자꾸 집착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