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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귤 Apr 29. 2022

아빠의 카레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까지 엄마는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인이셨다.


엄마가 일하는 회사는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동네에서 빨리 가도 한 시간은 걸리는 꽤 먼 시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빠의 직장이 오히려 집에서 더 가까워 아침 먹고 치우는 과정은 아빠가 많이 책임지셨던 기억이다. 엄마가 가끔 야근이나 회식으로 늦게 오실 때는 아빠가 저녁까지 마련하기도 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적당히 때우거나 동네에서 짜장면 같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도 했지만 가끔은 아빠가 직접 부엌에 서서 요리를 했다.


주된 종목은 카레였다. 만들기도 간단하고 한 그릇 음식이니 치우기도 간단하지만 의외로 카레도 맛있게 만들려면 공이 들어간다. 카레 가루 봉지 뒤에 써 있는 대로만 했을 때와 양파를 지긋이 볶고 토마토를 잔뜩 넣어서 천천히 약한 불에 끓여 만들 때의 맛 차이는 같은 가루를 써도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빠가 카레를 만들던 때는 1980, 1990년대의 일이었고 카레 가루조차 거의 한두 종류 밖에 없을 때였다. 아이 셋이 번갈아 가며 귀찮게 했을 테니 요리법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양파를 볶을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 때 카레 안에 들어 있었던 야채만 생각해 봐도 당연히 짐작할 수 있다.


아빠의 카레는 엄마의 카레와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금방 구분할 수 있었다. 감자든 당근이든, 아빠의 카레 안에 들어간 뿌리 채소는 뭐든지 큼직했다. 아이들의 입 크기에 맞춰 감자를 잘게 썰 만한 기술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 주먹만한 감자는 가로 세로로 한 번씩 칼질을 해서 네 조각. 당근은 무조건 길이를 따라가며 동그랗게 잘라서. 그렇게 큼직한 재료가 들어간 카레를 먹자면 감자 한 조각만 넣어도 입 안이 꽉 찼다. 어떤 때는 감자나 당근 속이 조금 덜 익어서 퍼석퍼석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다 잘 먹었다. 식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씹기 바쁜 와중에도 시끄럽게 떠들고 그러다가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한 소리 듣기도 하면서 열심히 먹었다. 한 접시씩 비우고 나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하나씩 까먹고 적당히 왔다갔다 하다 보면 현관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엄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나와 동생들은 아직 닦지 않아서 얼굴도 손도 끈적끈적한 채로 엄마를 맞으러 우르르 몰려갔다. 그러면 엄마는 우리들 머리를 한 번씩 쓸어주고, 아빠에게, 아이고 당신 수고했어요, 하고, 아빠는 엄마에게, 당신이 늦게까지 수고했어요, 같은 말을 나누었다.


맞벌이를 계속하며 아이를 키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의견을 물을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맞벌이 가정의 자녀로 자라 서럽거나 아쉽지는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아마 아쉬움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자라면서 부모와 만든 모든 기억에 아쉬움이 단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아주 희귀한 케이스 아닐까? 반대로 그 때문에 만들어진 특별한 기억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어차피 삶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순서 없이 뒤섞여 짜인 패브릭 같은 것이고. 가족의 틀 안에서 놓고 볼 때, 사실 인간이 인간과 연결된 모든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겠으나, 그 패브릭의 형상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어떤 식으로 지지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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