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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Dec 31. 2023

아직 남은 미영이 이야기

기억나는 대로 다 써본다


(0) 주마등이 스칠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너무 늦기 전에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는 거야.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인생을 복습한 오대수의 삶이 어떤 파멸과 구원으로 치달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15년이나 골방에서 내 인생을 복기할 건 아니니까. 이건 그냥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오나요"에 나온 자서전 쓰기를 응용한 처방일 수 있겠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중 결코 잊지 못하는 것들을 써 내려가자.

조 브레이너드의 "나는 기억한다"를 따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기억나는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써나가려 한다. 다 쓰고, 회상으로 괴로워하지 말고, 써버림으로써 기억을 떠올리는 횟수를 줄이고, 똑같은 말은 반복하는 나에 대한 자기혐오를 털어내려는 시도.

맑았던 강물



미영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어 이 기회에 다 써본다.


(1) 자초지종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단단히 마음이 상한 미영이가 '너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라며 쪽지로 절교를 선언한 일이 있었다. 짝꿍끼리 절교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미영이는 진지했다. 내가 계속 말을 걸자 한심스럽고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찌 화해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금세 평화롭게 지냈던 것 같다. 둘 다 모질게 딱 끊는 성격은 못되었는지, 다른 친구들이 화해를 부추겼는지, 내가 사과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절교는 하루를 채 넘기지 못했다.



(2) 미영이는 이것저것 잘하는 게 많았다. 과학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할 때 망설이는 아이들과 달리 메스를 잡고 힘 있게 개구리의 배를 갈랐다. 가정시간에는 도시락 주머니 만들기를 꼼꼼하게 잘했고, 미술시간에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도 곧잘 했다. 그럴 때마다 필기 성적이 좋은 나를 의식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수행평가의 비중이 낮은 시대여서 늘 나보다 성적이 낮았다. 1학기 기말고사에서 드디어 평균 80점이 넘었다며, 미영이가 기뻐했다는 소식은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나는 미영이 앞에서 90점짜리 성적을 입밖에 내지 않았고, 미영이도 자기 성적을 말하지 않는 게 우리 우정을 위한 불문율(?) 같은 거였다. 미영이는 끝없이 내 성적을 의식했고, 나는 미영의 성적을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담임은 게시판에 늘 성적표를 붙였다.

집앞 꽝꽝나무

(3) 돌아가며 본문을 읽는 국어 시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 배울 내용은 '자음과 모음'에 관한 이론이었는데, 앞사람이 읽다가 틀리면 다음 사람이 이어 읽기로 했다. 미영이가 읽는 부분에는 쌍자음이 나왔다. "ㄲ, ㄸ, ㅃ, ㅆ, ㅉ"를 "끼역, 띠귿, 삐읍, 씨옷, 찌읒" 이라 읽는 미영이의 또박또박한 발음에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데 선생님은 별 말이 없었다. 미영이는 여러 번 "끼역, 띠귿, 삐읍"을 반복했고, 그 페이지가 끝나도록 읽기는 멈추지 않았다. 본문이 끝나고 미영이가 자리에 앉자, 국어 선생님은 아주 잘 읽었다며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으쓱한 표정의 미영이를 보는 것도 곤혹스러웠고, 끝내 의문을 제기하지 못할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넘어가는 수밖에. 한참 세월이 지나고 무한도전에서 초성퀴즈 같은 게임을 할 때 누군가(하하였던가)가 "끼역, 띠귿"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한창 무식 대결로 웃기던 때여서 다들 껄껄 웃었다. "야! 그런 말이 어디 있냐? 쌍기역이지!!" 할 때 옛날 국어 시간이 떠올랐다.

학생이 그렇게 읽을 수는 있지만, 선생님은 그걸 제대로 알려주었어야 하지 않았나? 미영이도 언젠가 국어 시간에 받은 칭찬으로 다시 쌍자음을 그리 읽다가 부끄러워지지 않았을까?

맑은 바다

(4) 나도 시험을 완전 망친 적이 있었다. 마지막 기말고사 수학을 가채점했더니 50점인가 40점이 나온 거였다. 공간지각능력을 요하는 과목에 취약한 나는 육면체의 '꼬인 위치'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고, 수학을 폭망 해버린 거였다. 수학 선생님의 규칙에 따라 70점이 되지 않으면 예외 없이 교탁 앞에 나가 엉덩이를 맞아야 하는 처지. 1학기 때 매를 맞는 아이들(미영이 포함)을 보고 웃는 바람에 얼마나 욕을 먹었던가. 내가 매 맞는 아이가 된다니 아찔했다. 2학년이 시작하는 3월로 계획된 전학을 무조건 2월로 앞당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를 졸라서 전학을 서두르기로 했다.


점수를 들은 아빠가 무섭게 화를 내며 재떨이를 방구석으로 던지는 바람에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수학점수를 말한 결정을 후회했지만, 당기기로 한 전학을 다시 미룰 수도 없는 처지였다. 내가 2월에 전학한다고 하자 미영이는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수학 시간에 맞을까 봐 빨리 전학 가는 거지?"

아니라는 내 대답은 내 귀에도 거짓말로 들렸다. 쓸수록 미영이와 나는 그저 짝꿍이었을 뿐,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네.


부끄러움과 서운함을 안고 굳이 전학할 때 받은 1학년 성적표에 찍힌 수학 점수는 중간, 기말의 평균 70점이었다. 괜히 아빠에게 욕을 먹고, 미영이에게 비웃음을 사고, 다 끝난 학기에 전학해서 왕따를 당하게 된 바보 같은 수학 점수. 내가 너무 비겁해서, 수학 선생 성대모사를 하며 놀려대서,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나대서 받은 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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