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1 때 친하게 지낸 무리에는 미영(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얼굴이 뽀얗고 단정한 반묶음 머리를 한 미영이는 네 자매의 막내딸이었다. 매사 성실하고 깔끔한 느낌이 드는 여학생이었다. 노는 아이들 근처에도 가지 않는 모범생이었는데,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고 인근 남중 3학년이 데이트를 신청하는 일이 있었다.
편지를 받았는지 전화를 받았는지 모르겠는데, 부모님이 안 계신 다른 친구집에서 전화 통화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처음에는 앙칼진 말투로 "어떻게 제 번호를 아셨는데요?" 하며 거절했지만 끝내 호기심이 일어 광장코아(이 동네 사람들은 잘 알듯) 빵집에서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어린아이 같은 우리들에게는 파격적인 사건이어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빵집이라니, 우리 부모님 세대에나 만날 법한 약속 장소였지만 그때는 어린아이들이 카페에 가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최선이었나 싶기도. 미영이와 나를 포함해 4명 정도가 나간 것 같고, 중 3 남자애는 세 명이었다. 미영이를 좋아한다는 남학생은 짧은 스포츠머리(그 시대 중학생이라면 모두 그랬으니까)에 여드름 송송 난 까무잡잡한 피부,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다. 좀 무서웠다. 말수가 없는 대신 같이 나온 친구가 열심히 주인공의 매력을 설명했다. "복싱부여서 학교에서 아무도 까불지 않고, 진짜 멋진 친구"라는 말에 미영이를 포함한 모두가 두려움을 느꼈다. 불량 학생 아닌가! 귀밑 3센티미터 단발머리 교칙을 엄수하며 담임 선생님이 일본 아기기생 머리라 해서 풀뱅 앞머리도 모두 머리핀으로 꽂아 넘긴 우리에게는 이런 남학생과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감이 치솟는 순간이었다.
미영이 본인인지, 일행 중 누군가 인지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우리는 중학생이고, 아직 어리고, 이성 교제는 올바르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애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지만 미영이가 완강하게 고개를 젓자 어쨌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빵집에서 헤어진 우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참 주변을 서성였다. 혹시나 걔들이 미영이의 집까지 쫓아갈 수도 있었으니까. "남중 애들 이상하다. 좀 무섭다."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다 이런 말들이었지만, 이런 의문이 슬쩍 고개를 들기도 했다. '내 졸업 사진을 보고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는 없을까?'(없었다.)
아무튼 모범 학생인 우리들에게 남자아이들은 관심밖, 시험 성적이 중요했다. 성적 순서가 쓰인 종이를 게시판에 붙이는 야만의 시대였기 때문에, 학교 생활의 모든 것은 성적에 지배되었다. 나는 무리에서 유일하게 평균점수 90점이 되는 아이였다. 친구들 눈에 내가 그다지 똘똘하거나 성실히 공부하는 아이로는 보이지 않았는지, 내 성적에 궁금증이 많았다. 학원에 다니는지, 특별히 더 공부를 하는지 궁금해했다. 반 친구들이 모두 Ref에 열광할 때, 내가 그 노래를 모르자 "역시! 티브이도 안 보고 공부한다!" 라며 동생들과 만화 영화를 본다는 내 말을 거짓말 취급했다. 미영이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남동생이 받자 대뜸 "누나는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느냐?"라고 물었고, 초 3인 남동생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아주 열심히 한다."라고 대답했는데 그것도 걸고넘어졌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왜 집에서는 논다고 거짓말을 하냐는 아이들의 문책(?)에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난감했다. 아이들이 노는 겸 우리 집에 찾아온 적도 있는데, 내 책상을 샅샅이 둘러보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진짜 집중해서 열심히 듣고, 숙제하라는 것 다 하고, 쪽지 시험 전에 바짝 외우면 되는 건데, 너희는 도대체 왜 그렇게 성적이 낮은 거냐! 뭐가 그렇게 어렵다는 건지, 나는 이해를 못 하겠다!!"
이렇게 말했다가는 완전히 미움을 받을 테니, 매번 어버버 하며 웃어넘겼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다른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존중하면서 나에게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내는지.
촌스럽고 어린애 같은, 자기들보다 못해 보이는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게 거슬리는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매사 성실한 미영이는 성실함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음악이나 미술, 과학 실험과 가정 실기를 잘했지만 시험 성적은 좋지 않은 타입. 우수한 성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미영이가 보기에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시험 성적이 좋은 나는 눈엣가시였을 거라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중 1이 끝날 무렵 나는 이사를 하며 전학도 했는데, 미영이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학교 앞에 갔던 날, 문구사 앞 공중전화로 만나자는 연락을 했지만 미영이는 나오지 않았다.
"음... 보고...? 나중에...?"
나는 그런 미영이가 서운했지만, 전학과 동시에 따돌림을 당하는 바람에 속절없이 미영이를 그리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