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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an 19. 2024

주머니 속 쪽지

중 1 늦봄에 있었던 일


교복 셔츠의 아랫단은 항상 교복 치마나 바지 안에 넣는 부분이라 낡거나 더러워져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빨래를 하면 다른 부분은 다 깨끗해졌지만, 아랫단(찾아보니 '셔츠 테일'이라 부르는 부분 같다) 모서리는 점점 더 더러워졌다. 애당초 그 솔기나 매듭에 구멍이 나면 안 될 텐데, 큰고모의 의상실에서 맞춘 교복 셔츠는 꼼꼼하게 박음질이 되지 않은 거였다. 그렇다고 그 부분을 마구 잘라버려서는 안 되지만, 셔츠의 아랫단 모서리에 까만 먼지가 뭉쳐 들어가 있는 게 거슬리는 날이 있었다.  


봄이지만 몹시 더운 4월 어느 날, 집에 와서 교복을 벗다가 거슬리는 아랫단을 견디지 못하고 가위를 들었다. 위쪽으로 이어진 바느질 라인이 끊기면 일이 커질 수 있으니 아랫단을 살짝 손가락 한마디만큼 싹둑 가위질했다. 틈으로 까만 먼지를 긁어내려 했는데 수월하지 않아 양쪽을 한 번씩 더 잘랐다. 재단 가위처럼 잘 들지 않는 문구 가위로 서너 번 가위질 당한 셔츠 아랫단은 너덜너덜했다. 겨우겨우 먼지를 빼냈지만 옷 모양새가 엉망이었다. 가만히 둘걸... 후회할 때는 늦었다. 이제부터는 윗도리가 밖으로 절대 튀어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며 다녀야 했다. 너덜너덜한 틈으로 더 많은 먼지가 끼인다는 걸 왜 난 몰랐을까.


문어발이 된 셔츠와 교복 바지를 벗어두고 학교에 다녀왔더니 웬일로 시골에 있던 엄마가 와 있었다. 반가워하는 나를 보는 엄마의 얼굴이 어두웠다. 엄마 손에는 너덜거리는 교복 셔츠가 있었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자 구겨진 엄마의 미간이 펴졌다가 다시 찌푸려졌다. "도대체 너네 할매는 뭐 하는지..."

"혹시나 고모들이 너한테 뭐라고 하면 꼭 엄마한테 말해라. 알았지?"

그제야 떠올랐다. 교복 바지 주머니에 작게 접어넣어둔 연습장 조각. 집에 찾아온 둘째 고모가 하도 잔소리를 해서 몹시 화가 났던 날 저녁, 연습장에 오만가지 욕을 휘갈겨 썼었다. 그러고는 동생들이 볼까 걱정되어 연습장을 가방에 챙겼다가 또 학교 친구들이 볼까 두려워져 뜯어냈다. 그냥 구겨서 버려도 되었을 텐데 그 분한 마음을 함부로 쓰레기통에 넣고 싶지 않아서, 내용이 엉망이긴 하지만 혼자서 써낸 긴 글이 아깝기도 해서 아주 작게 접어서 교복 주머니에 넣어 다녔던 것이었다.

종이에 쓰인 내용은 대충 이랬다. 둘째 고모가 와서 나와 여동생에게 설거지도 안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는 것, 아주 밉살스러운 그 말투를 듣고 화가 난 내가 여동생에게 화를 내며 설거지를 하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동생이 울었다는 것. 지가 뭔데 우리 집에 와서 엄마도 안 하는 잔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고모면 와서 집안일을 해주든지, 왜 와서 짜증 나게 하는 거냐. 얼마 전에는 자기 딸(나보다 한두 살 어린)이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갔다고 그렇게 자랑을 해대더니, 아주 할 일이 없구나. 합창단 들어갔다고 으스대는 사촌 동생도 정말 꼴 보기 싫고, 막내 고모는 다 같이 있어도 내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고 걔만 이뻐하는 티가 다 난다.


엄마가 이 글을 읽고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싶어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일러주고 싶던 얄미운 고모들에 대해 엄마가 알게 되어 좋기도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는 처음부터 내내 못된 시누이였던 고모들을 더 싫어할 타당한 이유가 될 뿐이었겠구나 싶다. 엄마가 다음부터는 꼭 말하라고 했지만, 고모에게 서운한 일이 있다고 하나하나 말할 수는 없었다.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통화도 자주 하지 않는데, 일일이 그런 걸로 무슨 전화를 하겠는가? 그리고 몇 달 후에는 할머니가 갑자기 시골에 들어가며 엄마가 바통 터치하듯 우리와 살게 되었으니 더 이상 고모들이 우리 집에 자주 오지 않았다.

30년쯤 지나보니 이제 고모의 신경질이 이해되기도 한다. 자기도 애들 돌보랴, 살림하랴 바쁜데 엄마가 전화해서 오라고 해대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근처에 큰고모가 살아 좀 더 멀리 사는 둘째 고모가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가 아플 때 공중전화로 둘째 고모네 집에 전화한 기억이 있다. 고모도 딸을 붙잡고 끝없이 며느리 흉보고, 아프고 힘들다는 말을 늘어놓는 엄마를 견뎌야 했겠지. 엉망진창인 방을 청소하고, 변변찮은 반찬에 맛없는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하는 방문이 기꺼울 수 없었을 것이다. 늙고 힘없는 엄마에게 애를 셋이나 맡겨놓은 오빠 내외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고, 중학생씩이나 되어서 할머니의 집안일을 돕지 않는 큰 조카(나)도 예쁠 리가 없었겠지.


아주 가끔 둘째 고모(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가 떠오를 때가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가 딱 한 번 결혼시장에서 마주쳤던 야위고 아파 보이던 모습, 아주 옛날 토요일에 귤색 홀치기 무늬 반팔 티셔츠를 입고 우리 집 앞 골목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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