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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an 23. 2024

답답한 여중생

융통성이 없어도 그리 없었나


 군대도 아니건만 기강을 잡는 기간이랍시고 단속이 유별했던 3월, 교문에 매일 학생 주임 선생님이 서 있었다. 오래된 양복을 입고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명찰이 없거나 복장이 불량한(화려한 양말이나 머리핀 따위) 학생을 잡아내는 날카로운 눈이 네모난 안경 안에 반짝였다. 어느 날 아침 명찰(증명사진 아래 이름이 쓰인 사원증과 비슷한 디자인)이 학교에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쿵쾅대는 가슴을 붙잡고 학교 담벼락 바로 뒤에 사는 친구(곱슬머리와 빨간 볼이 귀여웠는데 이름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서둘렀지만 이미 교문에 학생들이 북적이는 시간이 되어서야 학교에 다다랐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무리에 끼어서 따라 들어가면 들키지 않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들키면 몇 배는 더 혼날 수 있었다. 선생님에게 혼나고, 자칫하면 머리통을 얻어맞을 수 있고, 선도부에 이름이 적히면 방과 후에 다시 곤욕을 겪을지 몰랐다.


 일찍 교실에 들어가서 화단 옆 담벼락으로 명찰을 던져주기로 한 친구는 선도부가 무서워서 들고나온 빨간 명찰을 내게 건네지 못했다. 선도부 언니들과 등교하는 학생들, 학생 주임의 눈길을 끄는 줄도 모르고 나는 교문 앞을 하염없이 서성댔다. 슬쩍 걸어 들어가다가 "야! 야! 너! 거기!"하고 붙잡히는 내 모습을 머리에 그리면서, 이미 구석에서 벌을 서거나 쓰레기를 줍는 다른 학생들 사이에 내가 끼인다는 수치스러운 상상이 이어졌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더 망설이면 지각이다. 지각하면 매를 맞을 수도 있는데 그전에는 교문을 통과해야 했다.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택할 방법은 이실직고뿐이었다. 용기를 끌어모아 학생 주임 선생님 앞에 가서 섰다.

어제 노을

 "응? 왜? 너 뭐야?"하는 선생님에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저기…어제…학생증을… 교실에… 두고 가서요…."

"뭐?"

"저…명찰이… 없어서요…."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 "쓰레기 줍고 들어가." 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선도부 언니들 사이를 지나는데 다들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그날따라 운동장은 어찌 그리 깨끗한지! 종이 조각 두어 개를 겨우 줍고 교실에 들어왔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아침에 내 전화를 받은 친구가 깔깔 웃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실에서 명찰을 들고나왔던 친구는 내가 우물쭈물하며 선생님에게 가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그런 내 모습을 다른 친구들 앞에서 흉내 내보이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깟 일에 쫄아서 겁을 잔뜩 먹는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도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워서 찌푸린 얼굴로 따라 웃고 말았다. 어휴, 어쩌면 그리도 답답하니.

 

오늘 낮달

  등굣길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기억 하나. 시험이 끝난 때였는지, 담임 선생님의 수업인 도덕 시간에 조를 나누어 스피드퀴즈를 한 적이 있었다. 역사와 도덕 교과서 내용으로 문제를 냈다고 해서 설명하고 맞히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짝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4군 6진을 개척한 장군, 세종 대왕과 함께! 아니다 세종 대왕 시절…. 그러니까 유명한 그 사람 있잖아!” 짝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같은 팀 아이들이 작은 소리로 “야! 그렇게 설명하면 어떡해! 플라스틱 신드롬!!”했지만 나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다. 가수 김종서와 퀴즈 정답의 김종서는 다른 사람이니까, 가요로 설명하면 짝이 “김종서”라고 맞혀도 선생님이 정답으로 인정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럴 바에는 틀리더라도 꿋꿋하게 정식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팀원들의 원망을 샀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때 나는 ‘플라스틱 신드롬’이라는 노래 제목을 발음하는 것이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그 시절의 나는 숨 막히도록 답답한 아이였다.


  1학년을 다니고 떠나온 중학교를 지도에서 찾아보니 이름이 바뀐 남녀공학 중학교가 나왔다. 로드뷰도 찾아봤다. 30년 가까이 지났으니 내가 기억하는 길을 볼 수는 없다. 여중은 걸어서 40분쯤 걸렸다. 6번(아닐 수도) 버스를 타면 금방이었지만 같은 노선을 지나는 학교가 많아서 아침에는 늘 복잡했다. 버스가 자주 오지도 않아서 자주 걸어 다녔다. 버스를 탈까, 고민하는 대신 하굣길에는 슈퍼에서 빵을 사 먹으면서 천천히 집까지 걸어왔다. 오늘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부끄러운 순간을 곱씹으며, 피아노 선생님이 사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 미영이를 점 찍었던 남자애가 있는 남중을 지나며 이런저런 상상 속 이야기를 중얼대면서 돌아오던 길. 써두지 않으면 또 미룰 내 모습이 뻔해서 그냥 써서 올린다. 그만 좀 떠올라라, 김종서도 학생 주임도!!


 다음에는 중1 내내 나를 괴롭힌 악몽 이야기를 써야지.

걱정스러운 홍매화 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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