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여름
여름이 사랑하는 친구는 윤이다. 윤이 이외의 친구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작년에 유치원에서 같은 반 친구로 만난 윤이는 아랫동네 아파트에 살고, 같은 학교 옆 반 친구이다. 그려오는 모든 그림에 여름과 윤이 나란히 등장한다. 여름은 윤이네 아파트에 이사를 가자고 나를 조르고, 윤이는 자기 오빠 대신 여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둘은 어른이 되면 같이 살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어디에서 같이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 사는 집에는 각자의 가족들이 있으니까 누가 가서 살기 좀 그렇고(?) 이 동네에 있는 아파트 가운데 윤이네와 우리 집이 둘 다 가까운 곳에 살면 되겠다고 말하는 여름.
"엄마, 윤이한테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어. 예를 들면 케이크?"
"너는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만들어준다면서? 나도 케이크 좋아해." 내가 유치하게 받아치자
"내가 케이크를 잘 못 만드니까 엄마가 다 도와줘야 하잖아? 그걸 엄마한테 주면 그냥 엄마가 엄마 음식 만드는 거 아닐까?"
맹랑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내가 윤이한테 케이크 만들어주는 거잖아. 여름이 니가 만드는 게 아니잖아."
수요일은 윤이와 함께 방과 후 교실에 가니까 좋고, 목요일은 윤이와 못 놀아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여름. 집중해서 무얼 그리나 보면 윤이와 닌텐도 하던 추억을 그리는 여름. 다 그린 그림을 복사해서 둘이 한 장씩 나눠가지겠다며, 윤이에게 줄 그림 뒷면에는 비타민 사탕을 테이프로 꼭꼭 붙인다.
일요일에는 같이 놀기로 약속했다지만, 윤이는 여름만큼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 무던한 어린이라서 일요일인 오늘, 윤이를 초대하겠다는 여름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 침대가 무너져라 발길질을 하고 눈물을 뽑았다.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결국 혼이 나서 더욱 눈물을 흘렸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땀에 젖어 머리카락이 들러붙은, 퉁퉁 부은 얼굴로 다가와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니까, 먼저 윤이가 놀자고 하면 노는 거야. 알았지? 맨날 여름이가 놀자고만 하잖아. 기다릴 때도 있어야지."
알아들었을 리가 없지만 우선은 끄덕였다.
윤이를 몇 번이고 집에 데려와 함께 놀게 하고 싶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은 혼자 놀러 다니지 못하는 1학년의 사정도 있는 법이니, 좀 더 크면 실컷 둘이 놀라고 말해주지만, 한 명 친구에게만 집착하는 여름이 어린 시절의 나와 너무 닮아서 어쩌면 좋은가 싶다. 친구보다 더 웃고 더 울고 더 서운해하면서 자라는 거지 뭐, 별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