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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는 사회

현진건과 정신과

by 원효서


학급문고에서 만난 현진건의 단편 "술 권하는 사회"를 좋아했다. 일제 강점기에 가진 것 없는 지식인 남편이 끝없이 좌절하여 자꾸만 술을 마시자, 세상모르게 조신한 아내가 걱정한다. 누가 우리 서방님에게 자꾸만 술을 먹이느냐 물으면 남편이 한숨을 섞어 대답한다. 이놈의 세상이, 사회가 자꾸만 나에게 술을 권한다고, 술을 아니 마시고 살 수가 있겠느냐고. 순진한 아내는 그 "사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


술을 많이 마실 때 자주 떠올렸다. 이 세상이 나를 술 마시게 한다고, 이런 세상에서 안 마시고 버틸 수 있느냐고, 때로는 짐짓 울분에 차기도 했었다. 세상과 사회를 탓하며 시작한 음주가 유일한 오락이 되어버렸을 때, 사회 탓하기는 진정성을 잃은 유희가 되었다. 낄낄대며 자조하며 술 권하는 사회와 술 마시는 나를 하나의 덩어리로 묶었다. 갓생도 미라클 모닝도 없던 시절, 온 세상이 음주에 관대해서 마음껏 술을 마셨다.


내가 술에 의지한다는 걸 인정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와 놀이터에 있다가 집에 들어올 때 꼭 막걸리를 사고 싶고, 저녁을 차리면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 기분이 스르르 풀렸다. 어떤 메뉴를 먹든 상관없이 술을 한두 잔 꼭 마시게 되었고, 지난해부터는 매일 먹지 않기 위해 자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차라리 술을 좋아하고 싶지 않다고, 술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딱 한 잔인데 좀 마시면 어떠냐는 심리는 당연히 남아있지만, 점점 더 불안해졌다. 힘들 때는 술을 찾아왔던 내 패턴이 나를 이루는 일부로 영원히 자리 잡은 걸까.


버럭버럭하고 싶지 않아 병원약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술을 자주 마셨다. 일주일에 세 번, 두 번으로 줄였지만 술을 살 때부터 기분이 풀어지는 건 변함없었다. 병원에 다닌 지 두 달이 좀 넘어가는 9월 중순이 되자 술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약에 적응해서인지 아이에게 또 소리를 빽 지르고, 신경질과 짜증도 내지만 혼자 뱉는 쌍욕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밥을 준비할 때 막걸리를 찾지 않게 되었고 늦은 밤 넷플릭스를 볼 때에도 맥주와 감자칩을 챙기지 않았다. 그제 의사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술에 관한 이야기를 했더니 '버거워서 자꾸 마시는 거죠. 술을. 견딜 만 해졌다는 거예요.'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으로 한 달 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래도 될 만한 사람을 만나면 주저 없이 약을 권하고 병원 위치를 알려준다. 사람들은 당연히 내 말을 듣고 병원으로 곧장 가지 않지만, 힘들 때에는 병원과 알약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애쓴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달콤한 디저트로 당 충전하면서 싹 내려주는 카페인 음료를 먹으면 반드시 건강을 해친다. 피부가 나빠지고 소화가 잘 안 되고 살도 쪄서 더욱 스트레스를 받고,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식욕이 돌아서 떡볶이를 먹고, 텁텁해지면 아이스크림을... 이런 반복보다 알약이 낫다. 술 권하는 사회, 약 권하는 사람, 약 먹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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