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응급실

다쳐도 놀 거 다 놀고 일기 쓰기

by 원효서

1. 응급실 간 날

내가 아파서 응급실에 오기는 처음이다. 아침 8시, 9개월 만에 하는 모두모디 오프라인 모임에 가려고 주차장에 가던 길에 넘어졌다. 이모랑 할머니집에 간다고 신바람이 난 아이가 달리기를 하자고 해서 그만. 하필 반바지를 입어서 양 무릎이 싹 까지고, 하필 오른손에 폰을 움켜쥔 채 바닥에 손이 부딪쳐서 새끼손가락이 완전히 삑. 그러나 통증이 심하지 않고 대구에서 출발한 일행이 나를 태우러 올 수 있어서 집에서 메디폼을 붙이고 장태산으로 갔다. 새끼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무릎에서 진물이 나서 불편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별로 아프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사진을 찍고 양 무릎을 소독하고(이게 젤 아팠다) 이걸 쓰는 동안, 배우 이동희와 닮은 의사 선생님이 와서 손가락이 아무래도 부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부러져도 나만큼 멍이 들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손으로 내 손가락을 꾹꾹 눌렀다. 특별히 아픈 부위가 없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멍이 유난히 잘 드는 체질이신가?" 엑스레이 결과를 보고 정형외과 외래 진료를 잡고 부목을 대고 약을 받았다. 내일 아침에는 어린이 참관 수업에 가야 하는데 계획했던 새치염색도 못하고 대충 씻었다. 의연하다 해야 할지, 무덤덤하다 해야 할지, 이 무감각한 기분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매일 먹는 약 덕분인가? 알고 보니 골절 통증에는 아주 강한 몸이었던 걸까? 다 나으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여러모로 불편하겠구나. 다정하고 친절한 선생님들 덕분에 응급실 진료도 나쁘지 않았다.


장태산에서 친구들과 보낸 하루가 너무 좋아서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아름다운 나무들과 깔깔 즐거웠던 우리들 덕분에 하루 마무리가 비록 응급실이어도 서글프지 않았다.




2. 손가락

섬섬옥수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영화에서도 인물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화면에 가득 차는 장면을 좋아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든가, 서명을 한다든가, 책장을 넘기고 타이핑을 하는 인물의 깨끗하게 손질된 단정한 손끝을 보면 어쩐지 인물에게 쉽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언제나 얼굴로 자신을 대표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가장 먼저 닿는 부분은 손가락이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손을 만나면 기쁘다. 순정만화처럼 선이 곱고 가느다란 손도 좋고, 힘줄이 두드러지고 손가락마디가 굵은 손도 멋지다. 연륜이 느껴지는 주름진 손에 옥가락지를 낀 손가락도, 빈틈없이 화려한 컬러로 채운 손톱도 매력 있다.


피부에 비해 유난히 핑크색인 손톱이 네모반듯하면서도 동그란 내 손도 좋아한다. 평균보다 살짝 큰 손과 손 크기에 어울리는 손가락도, 몸의 다른 부분에 비해 마음에 드는 포인트이다. 애지중지 관리하지는 않아도 흡족한 신체 부분이 있다는 건 흐뭇한 일이다.


평생 골절은 없었건만 마음에 쏙 드는 내 손가락에 금이 가다니, 적잖이 놀랍다. 며칠 째 아물지 않는 무르팍도 속상하지만 한 달 동안 스테이플러처럼 생긴 걸로 새끼손가락을 감싸고 다녀야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폰으로 잠깐 일기를 쓰는 동안 벌써 불편해지는 오른손이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