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찾은 별미는 뭐였냐
아빠는 시골 사람이다. 장을 보러 따라가면 아빠는 엄마에게 고용된 운전기사처럼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기다렸다. 시골에서만이 아니다. 자식들이 면허를 따기 전에는 홈플러스나 이마트에서도 차 안에서 기다리기를 고집했다. 전화를 걸어 채근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돈을 주고 고용한 기사가 아니기에 엄마와 딸들은 서둘러 볼일을 보게 된다. 기다리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그런 아빠가 얼마 전에 먼저 이마트에 가자고 말했단다. 요즘은 엄마와 대구에 있는 코스트코에까지 다니게 된 아빠이지만, 먼저 마트에 가자고 말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한 시간을 달려 가장 가까운 영천 이마트에 갔더니, 하필이면 휴무일이었단다. 바람 쐬는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인 엄마는 다른 곳에라도 들를까 싶어 아빠에게 이마트에서 무엇을 사고 싶었는지 물었단다.
"며칠 전에 아랫마을에 놀러 갔다가 새참으로 라면을 하나 먹었는데 참 맛나더라고. 이름은 모르겠고, 컵라면인데 내가 처음 먹는 거더라. 물어보니까 이마트에서 샀다고 하더라고."
이름도 모르고 맛나게 먹은 컵라면이 무엇이었을까? 엄마와 아빠는 함께 하나로마트에서 그 라면을 찾았다. '사리곰탕면 컵라면' 세상 흔해빠진 컵라면. 이마트에서 샀다고 하니 큰 마트에 가야 있나 보다 생각한 아빠의 단순함이 8살 손녀 못지않아 웃음이 났다. 88년도에 출시된 사리곰탕면은 우리 집에서 예전부터 자주 먹은 라면이었는데 말이다.
아빠는 여전히 물가를 잘 모른다. 아는 시세는 사과와 고추, 농기계와 퇴비와 농약 같은 물품들 뿐이다. 옷도 사다 주는 대로 입고 끼니도 간식도 주면 주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먹는 아저씨. 이제 일흔이 넘었지만 장을 볼 줄 모르고, 불편해하지도 않는다. 아빠에게 하나로마트에 가서 무얼 사 오라고 시키면 잘 들어주지도 않는다. 쌀이나 사 올까 한 정도.
결혼 초에 남편이 편의점에서 빵을 사 먹었다길래 무슨 빵? 했더니 "그거 이름을 보나?" 하던 거였다. 빵 이름도 안 보고 사 먹냐고 물었더니 대충 모양을 보고 산다는 거였다. 잘 모르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성미니까 잘 아는 흔한 모양의 빵만 사는 모양이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자세히 읽지 않고 고르는 바람에 한 입 먹고 후회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빵이고 과자고 대충대충 골라온다. 편한 삶인가? 부주의한 삶인가? 무던하다고 눙치고 넘어가기에는 과히 둔하지 않은가 싶다.
장보기의 운명을 짊어진 여자 어른들처럼 나도 주부로 살며 장 보는 담당이 되었다. 엄마와는 달리 도보로 금방 닿는 거리에 슈퍼마켓이 즐비하고 밤낮으로 인터넷 주문을 하면 뭐든 금방금방 도착하는 도시에 사는 나. 나는 장보기를 싫어한다. 신나는 유행가와 수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고민하는 시간이 싫고, 장을 보고 들어가면 그게 요리로 이어지는 노동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인터넷으로 왕창 장을 보고 나가서는 반찬이나 과일만 조금씩 산다. 그러면서 계속 부러워한다. 시시콜콜하게 장 보는 일을 하지 않는 아저씨들을, 밥상을 차리지 않는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