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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Feb 09. 2022

날씨 일기

연말에 쓴 날씨 일기


왕참나무와 하늘

12월 22일 수요일 오후 3시
화창하다. 아침에는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아쉬웠는데 오후 하늘이 새파랗다. 집 앞 오르막길 가로수인 왕참나무의 무성한 갈색 이파리 위로 새파란 하늘이 보여 기분 좋게 찰칵. 낮 기온은 무려 12도. 음지는 쌀쌀하지만 햇살 아래는 따뜻하다. 12월 하순이 이렇게 따스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12월 23일 목요일 오전 11시
겨울이면 두세 겹씩 입어야 하는 옷, 실내에 들어갈 때마다 풀어서 챙겨야 하는 목도리로 몸이 무겁다. 다행히 오늘도 어제처럼 포근하다. 두꺼운 옷을 여러 겹 껴입지 않아도 되어 좋다. 얇은 티셔츠에 긴 누비 점퍼를 하나 입고 집을 나섰다. 아, 티셔츠가 너무 얇았나?
저녁 5시 40분
더 두꺼운 티셔츠를 챙겨 입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유모차를 타고 빵집에 다녀오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밖에 나온지도 1시간이 넘어가니 다리가 아프다. 오늘 노을은 뿌연 빛이 섞여서 오묘하다. 붉은 노을 위에 밀크셰이크를 쏟은 듯하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본다. 어두운 소나무 뒤로 보이는 하늘은 아름답지만 내 눈에 보이는 만큼 찍히지 않는다. 연하늘 아래 연주황, 연분홍, 연보라, 연회색.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놀이터 앞, 점점 춥다.


12월 24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오늘도 저 위에는 눈이 오는지 카톡창에 눈이 펑펑 내린다. 오전에 잠시 나왔던 해가 구름에 가려져 하늘은 계속 흐릿흐릿 어둑한데 눈은 내리지 않는다. 동생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느긋하게 창밖을 본다. 짙은 초록과 갈색이 반복되는 산 풍경, 드물게 보이는 자작나무의 흰색이 돋보인다. 새하얀 몸통과 섬세하게 뻗은 뽀얀 잔가지들이 칙칙한 풍경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눈 오리 장난감을 들고 딱딱 소리를 내며 기대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눈을 기다린다. "눈 만나고 싶어. 눈이 안 와서 속상해." 하며 입을 삐죽거리는 아이를 볼 때마다 눈 오리를 신발장에 숨길까 고민하게 된다.

12월 25일 토요일 오전 10시
콧물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아동병원에 다녀왔다. 오늘은 정말 춥다. 바람이 날카로운 영하 6도. 차창밖에 보이는 나뭇가지들은 거의  흔들리지 않지만 차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부웅부웅 크게 들린다. 다행히 햇빛이 있어서 어깨가 오그라들 정도는 아니다.  

12월 26일 일요일 낮 1시
청송은 정말 춥다. 바람에 얼굴이 따가울 정도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행복한 날씨이기도 하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가 깨끗하다. 심호흡을 하면 가슴속이 시원해진다. 다시 바람이 불어오면 얼굴이 간질간질, 손끝이 얼얼해진다.


12월 27일 월요일 오전 11시 30분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한 시간 반을 달려서 영덕에 왔다. 풍력발전단지에서 내려가는 길부터 보이는 바다를 모두가 반가워했다. 영하 8도이지만 차창을 내리고 바다를 구경했다. 수평선부터 짙푸른 색 물빛이 가득했다.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바다 구경을 했다.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식당으로 바로 가기에는 아쉬운 마음. 아이는 일렁이며 밀려오는 파도 아래 거뭇거뭇한 해초를 보고 고래가 움직인다고 반가워했다. 함께 웃으며 파도를 구경했다. 파도가 부서지면 왜 하얀색인지, 바다에 왜 배가 없는지 아이는 궁금한 것이 참 많았다. 왜 그럴까? 같이 물으며 바다를 구경했다. 세찬 바람에 포말이 얼굴에 날아들 듯했다. 에메랄드빛, 터키석 색, 남청색이 다 보이는 겨울 바다. 바다를 보러 오기를 참 잘했다. 정지용 시인의 바다 2가 떠올랐다.
ㅡ지구는 연잎인 양 오므라들고……펴고……


12월 28일 화요일 오후 3시 20분
날이 그새 풀렸다. 오후가 되자 하늘이 희끄무레하지만 공기는 시원하고 깨끗했다.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한국 겨울 후의 특징, 삼한사온이 떠오른다. 늦은 밤에 있을 온라인 송년회를 위해 와인을 사러 다녀오는 길에 아이는 놀이터를 놓치지 않았다. 날이 풀렸다고는 해도 미끄럼틀 난간은 얼음장인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올라갈 수 있는 계단, 사다리는 놓치지 않고 다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힘이 든다 싶으면 젤리를 하나 입에 넣고 폴짝폴짝 뛰어가는 아이. 여동생과 나는 와인과 과자봉지가 담긴 유모차 옆을 서성서성. 손이 시렸다.


크리스마스날, 꽃과 마카롱


영덕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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