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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Apr 13. 2022

나무의 4월은

모두 다른 속도로

 완연한 봄이다. 올해도 성급하게 찾아온 더위로 어제오늘 하원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늘진 자리에 선 벚나무의 꽃도 서둘러 진 자리에 초록 잎들이 가득 올라왔다. 목련의 둥근 잎과 느티나무의 톱니 모양 잎 테두리가 선명해졌다. 며칠 전만 해도 새로 돋은 두릅처럼 모여 있던 나뭇잎들이 활짝 펴진 것을 올려다보며 놀랐다. 아, 이제 정말정말 4월이야.

 꽃사과나무와 라일락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사과는 분홍색 꽃봉오리로 맺혀 있다가 새하얀 꽃을 피워낸다. 흰색과 분홍의 조합은 세상에 많고 많지만 여린 잎 끝에 한 방울 톡 떨어뜨린 붉은빛을 발견하면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렇게도 사랑스러울까, 하며. 양지바른 곳의 라일락은 벌써 꽃잎이 말라간다. 화단 곳곳에 심긴 라일락은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향기로 자신을 알린다. 들여다볼수록 하나하나가 귀여운 라일락 옆에는 황매화가 풍성하다. 황매화도 만개했다. 잎의 초록빛도 한여름처럼 짙어졌고 꽃잎들은 아이들의 크레파스 그림보다 선명한 노란색이다. 박태기나무의 오밀조밀한 꽃들은 눈이 부신 자주색, 조팝나무의 밥풀만한 꽃잎들은 달빛 같은 흰색이다.


 양지바른 곳에 무리지어 살고 있는 명자나무와 영산홍에는 빨갛게 불이 붙은 지 한참이다. 하나씩 피어나는가 싶으면 다음 날 꽃송이가 넘쳐나는 걸 보게 된다.

 내리막길을 걸으면 인도 안쪽은 단풍나무, 차도 쪽은 왕참나무가 가로수인 부분이 있다. 왕참나무는 겨우내 달고 있던 마른 잎들을 4월이 훌쩍 넘겨서야 떨쳐낸다. 4월 중순이 다가오는 오늘도 마른 잎과 앙상한 가지가 높이 뻗어있다. 마주 보고 선 단풍나무의 연두색 무성한 이파리와 대조되어 더욱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찰나, 새 잎이 돋아난 왕참나무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드디어, 너에게도 봄이 오는구나. 단풍나무와 함께 찰칵 사진을 찍어주었다.

 꽃나무마다 반기고 들여다보는 산책이 끝날 무렵, 아직 잎눈조차 잘 보이지 않는 나무를 발견했다. 잎이 무성해진 느티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서 있는 키 큰 나무, 너는 무슨 나무일까. 사진을 찍고 걸어오는 길 겨울나무처럼 보이는 배롱나무를 발견했다. 배롱나무들 중에서도 유난히 꽃을 늦게 보여주는 그 나무, 우리 동네에 단 하나 있는 연보라색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였다. 가장 늦게 꽃을 피우고  가장 늦게 잎을 떨구더니, 새 잎도 아주 늦게 나오는구나.

 우리의 봄은 모두 다른 속도로 오는구나. 아직 겨울인 것 같은 봄, 벌써 여름인 것 같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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