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가 무엇이기에
59.4kg 눈뜨자마자 화장실에 다녀와서 확인한 숫자이다. 손가락 골절과 이석증 이후 운동이라 부를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아 몸무게가 늘었다. 플라잉 요가는 몸을 들어 올리는 동작이 많아서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면 힘이 들고, 매달리기가 수월하다 싶으면 1kg이라도 줄어든 것이 확실했다. 내가 기준으로 잡는 몸무게는 58kg이다. 목표로 하는 56kg은 대장내시경 검사날 아침 이후로 나온 적 없고 식생활에 따라 57과 59 사이를 오가는 게 보통이다. 57대이면 죄책감 없이 빵을 먹고 저녁밥도 배불리 먹는다. 58대까지 별로 의식하지 않지만 59가 넘어가면 기분이 확 달라진다. 배꼽이 깊어진 듯도 하고, 브래지어 라인 아래위로 튀어나온 살이 눈에 띈다. 평생 동그란 얼굴에 이어지는 얕은 턱라인에 붙은 살, 팔뚝라인과 옆구리를 꼼꼼히 살펴본다.
날씬해 보이고 싶어 꺼내 입은 목이 깊게 파진 티셔츠, 티셔츠를 밀어 넣어 잠근 밴딩 청바지 허리가 조여 온다. 오늘부터 커피 타임에 소금빵 금지! 저녁밥 먹을 때 반주 한 잔도 금지다! 저녁을 일찍 먹고 주방을 마감하자! 결심은 50퍼센트 확률로 지켜진다. 빵과 면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먹게 된다. 두부 버섯 샐러드를 정성스레 만드는 날에는 밥 대신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냉장고를 연다. 밤늦게 영화를 보는 날이면 감자칩이 간절하지만, 체중계 숫자가 힘을 발휘해 맹물을 배불리 마신다.
과식 없는 일주일이 지나고 몸무게는 58.5kg. 친구를 만나 여름내 차로 다니던 길을 걷기로 한다. 한 시간을 걸어가 커피와 치아바타를 먹고 또 한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장터에서 떡볶이를 사 와서 먹고(이러려고 걸었나) 커피를 한 잔 타서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눕는다. 저녁을 안 먹으면 된다고 속으로 중얼대며 편안하게 새로 나온 슈퍼맨을 즐겁게 감상한다. 아이와 복닥대는 시간을 보내며 저녁식사는 패스하고, 샤워를 한다. 속상할까 봐 저녁 시간에 체중계는 피한다. 로션을 바르면서 흐린 눈으로 피부 상태와 군살을 외면한다. 정말이지 한 순간도 몸의 모양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통제하기 힘든 정신과 감정에 비하면 체중 조절은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임신 기간을 제외하면 내 몸은 스무 살 이후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강한 통제 성향을 자각하고 아이를 속박할까 조심하는 대신 내 몸매에 더 엄격해졌다. 무시무시한 나잇살, 식욕을 향한 죄책감과 건강에 대한 염려가 나를 옥죈다.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여성 작가들의 글을 읽고 페미니즘을 공부해도 몸무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존경하는 작가들 역시 나와 같은 고민에 빠져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고, 적어도 다른 이들의 몸을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내 수준에서의 최선일 지도 모른다. 나의 체중 강박을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뼈가 덜 붙은 새끼손가락, 언제 어지러울지 몰라 불안한 이석증, 유방 초음파에서 발견된 섬유선종 수술날짜를 잡고 나서도 빠지지 않는 체중 1kg에 대한 근심이 없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얼굴과 목의 잡티를 없애기 위해 피부과 전화번호를 저장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러닝벨트가 오늘 도착했다. 내일부터는 반드시 더 걷고 달리리라, 또 한 번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