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말이야
외로움은 부끄러운 것이다. 누구에게 부끄러운지 잘 모르지만 거절만 당하고 살아온 사람처럼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결코 잘못이 아니어도 수치스러운 가난과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외롭다는 말을 내뱉고 나면 텅 빈 통장 잔고를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홧홧해진다. 외롭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와버리면 오늘 밤 연인이 필요하다는 끈적한 암시처럼 들릴까 봐, 이제 그만 집에 가려는 친구를 억지로 붙잡았을까 봐 옆에 있는 사람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내뱉은 외로움의 말이 바닥에 뒹굴기 시작하면 무리하게 쾌활한 척 분위기를 전환하려 애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후회한다. 셀 수 없이 건넨 농담과 웃음으로도 가려지지 않았을 빈곤한 내 마음을 표현한 순간을 곱씹는다.
내게 외로움은 바지를 입지 않고 거리는 헤매는 꿈, 활짝 열린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힘을 주는 꿈을 떠올리게 한다. 온천 원숭이가 되어 버들잎이 드리운 노천탕에서 깔깔 웃는 가족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악몽, 귀신이 된 나에게 무섭다고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떨리던 슬픈 꿈, 거인이 쿵쿵 발 구르는 리듬에 맞춰 땅 속으로 껴져 가던 무서운 꿈, 뚜껑 없는 관에 누워 직사각형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발 그만하라고 외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던 꿈이 떠오른다. 이런 악몽을 꾸었노라고 어리광 섞인 목소리를 내며 파고들 품이 없던 시간까지 줄줄이 끌려 나온다. 외로움에 잠긴 기억들은 결코 짧은 회상으로 끝나지 못한다.
친구가 하나도 없어 점심시간에도 구석에 엎드려있던 같은 반 아이를 텅 빈 골목에서 만난 날, 그 아이는 나와 비슷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 놀러 갈래?"
높낮이가 다른 방 두 개 사이에 어설픈 싱크대가 놓여있는 집이었다. 할머니와 내가 사는 단칸방보다는 형편이 나아 보였지만, 남루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아이는 나에게 퉁퉁 불어 덩어리 진 칼국수와 식은 밥을 퍼주었다. 둘이서 냄비비닥에 눌어붙은 면발을 긁어먹을 때 아이의 엄마가 들어와 대뜸 화를 냈다. 나를 힐끗 보고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내가 먹을 거였는데 다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운동화를 발에 끼우고 그 집에서 나왔다. 그 아이는 골목까지 나를 따라와 다정한 목소리로 배웅했지만, 우리는 다시 같이 놀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빛을 쭉 외면했다.
우정을 갈구하는 내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우리 집에 놀러 갈래?"라고 말할 때 내 눈빛과 말투에 눈치가 덕지덕지 묻어 나온다는 걸 잘 알았다. 알지만 그만둘 수 없어서 괴로웠다. 난생처음 팥빙수를 만들어준 주인집 계단 앞에 기웃대던 여름날, 집에 있으면서 대답하지 않는 윤희네 집에 계속 찾아가던 4학년 겨울방학, 지혜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기며 울던 중학교 2학년 가을 저녁. 그럴 때마다 나는 식은 밥에 깍두기를 맛있게 먹던 그 아이의 통통하고 빨간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그 아이만큼 외로운 아이였지만, 나만큼 외로운 아이와는 놀고 싶지 않았다. 전업주부 엄마가 집에서 프렌치토스트를 구워주는 주인집 아들들과 드래곤볼을 보며 놀고 싶었다. 책꽂이에 창작동화가 여러 권 꽂혀 있는 윤희네 방에서 얄미운 반장을 흉보고 싶었다. 지혜가 전자레인지에 돌려주는 치즈를 앞니로 갉아먹으면서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끓인 수제비를 대접에 퍼 주는 친구였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우리 집에 두 번 놀러 오지 않았다.
다 자라고 나면 세상에 혼자 던져진 듯한 기분은 사라질 줄 알았다. 적어도 외로운 감정을 다스릴 수는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내게 외로움이란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빈칸, 가족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게 하는 공백이었다. 영원히 초록불이 들어오지 않는 사거리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으로 살았다. 누가 나를 불러준다면 고개를 휙 돌려서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걸까? 내 외로움이 남들에게 충분히 이해받을 만을 만한 것이길 바라는 동시에 누구와도 다른 특별한 것이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에 집착했다. 커플이 되면 서로에게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나의 것'이라는 낯 간지러운 욕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도 되었다. 내 고독의 땅을 몽땅 너에게 공유해 줄게, 그러니 너도 나에게 혼자의 전부를 내주어야 해. 네 외로움의 밑바닥까지 모조리 보고 싶어. 내 연애는 결국 연인들을 질리게 했고 그들은 같은 한줄평을 남기고 나에게서 떠나갔다. '부담스러워.'
외로움은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는 감정이다.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꼴사납다. 남에게서 발견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가운데에서도 가장 축축한 외로움. 사람들은 외로움이 겉으로 스며 나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가 없으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처럼 기피 대상이다. 그 둘은 보통 같은 사람이고 비슷하게 가엽지만 한참 후에 천천히 다가오는 측은지심보다 즉각적으로 들이닥치는 부담감이 외로운 사람에게서 뒷걸음치게 만든다. 어린아이가 무턱대고 떼를 쓰고 보챌 때처럼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내 곁에 있어달라는 요구는 어린아이라면 귀엽게 봐줄 수라도 있겠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어른은 모든 병이 꾀병처럼 보이는 엄살쟁이로 보일 뿐이다. 추위를 많이 타면 스스로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하듯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면 알아서 마음을 추스를 줄 알아야 한다. 본인이 인정하거나 인식하기 어려운 외로움을 오래 간직하고 살면 추접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벌초하러 온 조카들 앞에 소똥 바른 호박잎을 붙인 다리를 자꾸 내밀던 나의 할머니처럼.
외롭다고 말하지 않고 외로움을 달래려면 필사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노력을 들키지 않기 위해 태연을 가장하느라 아등바등하다 보면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사람에게 매달릴 기력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혼자 있을 때에도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 부끄럽다. 구원해 줄 사람을 바라는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워.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의지하려 해도 홀로 살고 홀로 죽는 거야. 다 알고 있어도 혼자 못 서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럽다. 누구도 혼자서만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알면서도 고독에 통달한 도인이라도 되는 양 냉소하며 외로움을 숨기려는 내가 여전히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