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후유증

들여다보면 무얼 하겠냐마는

by 원효서

어른들이 모두 나를 원한다면 내가 왜 그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하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강제로 가족애를 다지게 만들어놓은 설연휴가 문제이다.


압축팩에 넣듯 꾹꾹 나를 눌러놓고 만나는 어른들이지만 이틀이 지나면 자의식이 슬슬 올라와 기어코 무엇이 왜 어떻게 불편한지를 골똘히 고민한다. 엄마, 아빠, 어머님, 아버님,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명절에만 보는 친지들. 이 모든 사람들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싫지도 좋지도 않은 마음으로 나누는 덕담. 세상 모두가 진실만을 말한다면 그게 지옥이겠지만, 인사치레뿐인 대화도 의미 있다고는 못하겠다.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운 연휴였다.


엄마는 늘 욕하는 동네 아줌마 험담을 하고 또 했고, 어머님은 동네 문제 할아버지를 또 흉봤다. 둘 다 욕먹어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여자 어른들이 나를 붙잡고 할 말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 험담뿐인 점이 싫었다. 험담에 효용이 있다면 뒷담 나누는 사람끼리 끈끈해지는 것이 가장 클 텐데, 나와는 아무 관계도 소용도 없는 사람에 대한 재미없는 뒷담에는 효능이 없다. 나는 그냥 들어주기만 하는 감정 빨래통(쓰레기통이라고 쓰고 싶지 않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이런 기분이 든다. 정말 나를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남 욕뿐인지? 그렇다면 나도 상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남 욕뿐인가?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도 상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지만 엄마나 어머님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엄마가 욕하는 동네 아줌마는 엄마의 단점을 쥐어짠 진액 같은 사람이고, 어머님이 욕하는 동네 할아버지는 동네 아저씨들의 총합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니까.


엄마는 아줌마보다 백 배는 나은 처지라고, 어머님도 할아버지네보다 백 배는 나은 형편이라고 자신을 토닥이는 결론만을 용납한다. 내 이야기 대신 뒷담화를 화제 삼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에서 주워들은 불행한 사례만을 엄마와 어머님에게 전한다. 나에게 어떤 불안과 불만이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친구들도 있고 일기장도 있으니까.


하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한 마디 하긴 했다. 동네 아줌마 욕하는 것 말고는 나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욕할 친척들이 사라지니까 그 자리에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하는 거냐고, 덜 미워하고 불쌍히 여길 수 없냐고. 말하면서 생각했다. 엄마의 뒷담화를 듣기 싫은 건 엄마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엄마를 더 몰아붙이지는 말자고. 동네 산책이라도 나가야겠다고. 단점만 보이는 거울을 그만 바라보자. 일기도 그만 쓰고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