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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Apr 04. 2022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는 사이

나물 반찬을 좋아하는 우리



 집 앞에 홍매화가 피는 2월 하순부터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들이 있다. ‘봄동을 무쳐 먹으면 맛있는데, 달래 간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좋겠는데, 냉이 넣은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 다음 장날에는 나물을 사러 가야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지만 꽃놀이를 몇 번 하고 나면 봄나물 철도 지나버리기 마련이다.


 나는 나물을 제법 좋아한다. 제사상 3종 세트인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부터 참나물과 취나물, 부지깽이나물, 방풍나물도 좋아하고 곤드레밥, 고추 이파리는 없어서 못 먹는다. 손이 많이 가는 고구마 줄기, 비싸서 먹기 힘든 더덕구이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스스로 해먹을 줄 아는 나물이라고는 콩나물과 무생채, 시금치 정도인데 그나마도 반찬 가게에서 사다 먹는 형편이다. 집에서 나물 반찬을 즐겨 먹는 이가 나뿐이라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기에 번거롭기 때문이다.


 본가와 시가가 산골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나물 반찬 얻기는 어렵지 않다. 아주 어릴 적에는 할머니나 아빠를 따라 고사리 순을 꺾으러 다니기도 했는데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 땅이 녹을 무렵만 되면 어머님은 냉이와 달래를 하러 다니신다. 3월에 시가에 가면 고추장으로 맵싸하게 무친 달래 나물과 들깨를 듬뿍 넣어 구수하고 향긋한 냉잇국이 반드시 식탁에 올라온다. 무릎 아프시다면서 이걸 다 캐러 다니시냐고 하면 ‘나물이 거기 있는 걸 아는데 가만히 앉아서 내버려 둘 수가 있어야 말이지. 해다 먹으니까 얼마냐 맛있고 좋으냐.’ 하신다. 내가 정말 맛있다며 대접 가득히 밥을 비벼 먹고 있으면 어머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이제 곧 고사리도 하러 가야지. 우리만 아는 자리가 있거든. 남들 오기 전에 새벽부터 가서 고사리 꺾어야 한다.”


 나물 무침에서 내가 담당하는 역할은 겨우 이 정도다. 다진 마늘이나 참기름을 꺼내 주며 "이 나물 맛있다. 이름이 뭐야?" 하는 딸, 소복하게 담긴 나물 그릇에 깨를 뿌리며 "이 정도면 되나요?" 하는 며느리. 일손은 안 되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 누구보다 야무지게 나물 반찬들을 챙겨 온다. 내가 해 먹으면 귀찮지만 얻어먹으면 행복한 온갖 음식 중에서도 단연 나물 반찬이 최고라고, 나만큼 나물 반찬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와 커다란 대접에 밥을 싹싹 비벼 먹으며 즐거워한다.


 봄나물을 직접 해 먹어야 하는 글방 과제를 받고도 화요일마다 일이 생겨 장터에 가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에 배송된다는 봄나물을 검색해서 취나물과 참나물을 주문했다. 무얼 제대로 읽지 않았는지 취나물은 적당한 한 봉지가 왔는데 참나물은 1kg이나 왔다. 취나물은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며,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 준단다. 효능을 읽다 보면 거의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나물밥, 전, 튀김, 무침과 볶음 등 거의 모든 요리가 가능하다는 취나물. 마침 남편이 저녁에 술 약속이 있다기에 동네 친구를 초대하기로 했다. 혼자 있다가는 아이가 좋아하는 간장 계란밥이나 대충 해 먹고 나물 반찬 만들기는 미루고 또 미룰 것이 뻔하니까.


 블로그에서 취나물 된장국 조리법을 찾아 읽어 보고 책갈피를 해둔 채, 친구를 만나 새로 생긴 빵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그림을 그렸다. 집에 돌아와 씻으니 벌써 3시. 하원 시간이 한 시간 남았으니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해 보기로 한다. ‘아이들은 생선구이를 배달시켜서 된장국이랑 먹이면 되겠다. 우리는 콩나물밥이랑 나물 겉절이를 해서 먹자.’


 읽은 대로 끓는 물에 취나물과 소금을 넣어 데치고 물기를 꼭 짠다. 취나물을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 담아두고 찬물에 고체 육수 한 알을 넣어서 끓인다. 나물밥에도 넣고 겉절이에도 넣을 요량으로 무는 크게 한 도막 잘랐다. 육수가 끓는 동안 콩나물을 씻고 무채를 썬다. 무채를 썰다가 된장에 무친 취나물을 육수에 넣는다. 아이들 먹을 흰쌀을 꼬마 밥솥에 하나 안치고 큰 밥솥에는 흰쌀과 보리를 섞어 담는다. 물 양을 적게 잡고 콩나물과 무채를 올려 밥통 안에 넣어 둔다. 처음 만드는 콩나물밥, 쉽다고는 하지만 망칠까 봐 걱정스럽다. 냉동실에서 꺼낸 다진 마늘 덩이를 반으로 뚝 잘라 작은 반찬통에 넣고 간장, 고춧가루를 넣는다. 그사이 완성된 취나물 된장국은 육수와 집된장 덕분에 구수하니 맛있다. 취나물 겉절이를 하려고 보니 양이 좀 적어 참나물을 한 움큼 꺼내서 씻고 가위로 숭덩숭덩 자른다. 참나물과 취나물이 섞인 샐러드 볼에 무채를 넣고 고춧가루와 설탕, 간장과 소금을 넣어 버무린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식초를 넣을까 하다가 레몬즙을 조금 뿌렸다. 아직 덜 녹은 다진 마늘 덩어리를 손으로 으깨면서 시계를 보니 하원 차량이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간다. 밥솥 두 개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도마와 칼을 씻는다. 양념장에 참기름을 두르고 겉절이를 맛본다. ‘음, 이게 무슨 맛이지? 좀 이따 다시 간을 맞춰야겠다.’ 급히 아이를 데리러 나선다.


 시간이 지나 양념이 스며들자 겉절이는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 되었다. 친구가 와서 겉절이를 먹어보더니 설탕을 좀 더 넣으면 되겠다고 했다. 접시와 반찬통에 겉절이를 옮겨 담고 간단히 설거지했다. 콩나물밥은 적당히 눌어붙어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밥솥을 연 김에 한 주걱을 슬쩍 퍼먹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만난 친구와 나는 또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소파에서 뛰다가 이불에서 숨바꼭질하다가 미끄럼틀을 타며 술래잡기를 하며 잘 놀았다.


 배달 주문을 한 생선구이를 더해 밥상을 차렸다. 오랜만에 그럴싸하고 건강한 상차림이었다. 친구의 네 살 아들은 취나물 된장국을 그릇째 들고 마셔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생선 살을 발라 밥숟가락에 올려 주면서 엄마들은 콩나물밥을 양념간장에 비벼 먹었다. 한술 먹자 입맛이 돌아 며칠 전 먹다 넣어놓은 바나나 막걸리를 꺼냈다. 막걸리를 반주로 먹으면 배가 너무 차는 단점이 있지만 어쩌랴, 이런 저녁은 기분이 좋은걸. 환영받는 식객인 친구는 다 맛있다며, 언니는 그림도 잘 그리고 밥도 잘하는 장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겉절이는 신선해서 괜찮은 정도였고, 된장국은 아이가 먹기에는 좀 짰다. 그래도 내가 막걸리를 두 잔 마시는 동안 친구는 우동 그릇 가득 담아준 콩나물밥을 남김없이 먹어주었다. “이제 나물 반찬까지 잘하다니! 언니는 못하는 게 뭐예요!” “성격이 안 좋잖아.” 둘이서 까르르 웃으며 배불리 저녁을 먹고 친구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동안 설거지도 뚝딱 마쳤다. 냉장고에는 남아있는 참나물을 데쳐서 무쳐보고 맛이 괜찮으면 나눠 주겠다고 하니 친구가 기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열심히 밥상을 차리는 순간은 친구와 밥을 먹을 때다. 밥상을 차리는 수고와 정리의 번거로움을 알고, 나와 입맛이 비슷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나처럼 천천히 밥을 먹는 친구. 내가 냉이 반찬을 얻어 왔다고 하면 기뻐하며 달려오고, 방풍나물이 든 나물전을 구워주겠다며 초대하는 친구. 무말랭이를 나눠 주면 버섯 카레를 담아서 돌려주는 친구. 맛있는 빵을 샀다며 아침부터 나를 불러서 방금 내린 커피와 함께 내어주는 친구.


 아이를 데리고 밖에서 종일 함께 놀고 들어온 저녁,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은 우리가 좋아하는 손칼국수 집에 함께 가자고. 따끈한 재첩 국물에 보들보들한 면발이 일품인 칼국수를 우리는 또 깔깔 웃겠지. 옆에 앉은 아이들 먹이느라 국수가 좀 불겠지만, 저번에 못 먹은 파전도 먹어봐야지.




#미루글방

#봄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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