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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19. 2022

옳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책 "당신이 옳다"를 읽고 쓴 글



 어릴 적부터 나는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힘들었다. 머릿속에는 늘 생각이 넘쳐나고 사람들과 종일 대화를 나눴지만 혼자가 되면 밑도 끝도 없이 울적해지기 일쑤였다. 나는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지 못했고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나쁜 기억들만 되새김질했다. 슬프고 화가 나는 기억들에 빠져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면 스스로가 가여워서 견딜 수 없다가 이내 다시 화가 나고 슬퍼졌다.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흙탕물처럼 내 안에 머물러 있어서 아주 살짝 휘젓기만 해도 나는 휘청거리며 어두운 마음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 때에는 병원에 찾아갔고 우울증이나 분노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명상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 노력들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나는 마침내 그럭저럭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토요일 밤의 독서 모임에서 어쩌다가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요.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나서 혼자서 막 욕을 해요.' 흥분해서 말을 하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강박 성향입니다. 강박. 이런 분들은 원래 좀 그래요.'라고 해서 뭔가 허무한 마음이 들더라고 하니 멤버 한 분이 '당신이 옳다'를 읽어 보면 병원에 굳이 안 가도 괜찮다고 했다. 또 다른 멤버도 고개를 끄덕이기에 바로 주문을 하고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ㅡp92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무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오! 과연!! 책 한 권으로 치유받았다는 이야기는 잘 믿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책을 읽고 치유받았다는 말을 내가 하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검은 늪지 같은 얼룩들을 찾아가 더러운 부분을 삽으로 떠내고 맑은 물을 받고 옆에는 나무와 꽃들도 심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이 온통 '나, 나, 나, 나, 나!' 하는 내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던 나에게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용기를 주고 나를 돌볼 수 있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ㅡp105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나에게 공감해주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 바로 설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 싫어서 자신을 다그치기만 했던 것을 깨달았다. 다른 이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그 많은 말들을 했지만 한 번도 내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 나를 달래주는 사람이 없다며 서러워했지만 나조차 내 마음을 보듬어 준 적이 없다는 것.      꼴사납고 낯부끄럽다며 해주지 못한 다정한 말들도 내 마음에 건네주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타인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래야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만을 떠올리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만난 에피소드들 중 가장 눈물이 났던 이야기는 어린이집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6살 소녀의 이야기였다. 엄마가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딸아이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너를 괴롭힌 아이들을 엄마 아빠가 엄청나게 혼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그리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너를 괴롭힌 아이들 모두 내가 꼬집고 눈물이 쏙 나도록 혼쭐을 내주었다고 몇 번이나 말해주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기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니 그 어린아이가 '엄마, 고마워. 나는 이제 자유야.'라고 말했단다. 울컥해서 펑펑 울어버렸다.


ㅡp221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

 나도 그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줄 여력이 있었더라면 7살의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해 주기로 했다. 나도 이제 엄마가 되었고 그때의 내 엄마보다 나이도 더 많이 먹었고 이런 책도 읽고 배웠는데 못할 이유도 없지. 그래서 나는 일기장에 그 지긋지긋한 이야기를 또 쓰고 또 썼다.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질 때까지. 나는 이제 자유로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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