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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y 24. 2022

글쓰기를 좋아하니?

봄 글방을 마치며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은 싫은 것들을 먼저 쳐내고 남은 것 중에서 괜찮은 무언가를 골라내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햄버거를 자주 먹는 까닭은 요리하기 싫어서이고, 동물을 키우기는 싫으니 화초를 키운다는 식이었다. 무언가를 먼저 싫어하지 않고서는 좋아하는 것을 찾을 줄도 모른달까. 무언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질리지 않고 말할 수 있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내가 싫은 이유는 수십 개였고 내가 좋은 이유는 ‘솔직하다’ 외에는 떠오르는 게 별로 없었다.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익숙한 방식으로 찾았다. 말이 많은 내가 별로여서 말을 덜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목이 까슬거리도록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날이면 어김없이 찜찜한 후회가 그림자처럼 뒤따라왔다. 그런 후회를 덜 남기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못난 이야기를 쏟아부어도 일기장은 나를 탓하지 않으니까.

 스무 살 때 쓰던 온라인 일기장에는 '좋아'와 '싫어'라는 두 개의 게시판이 있었다. 언제나 좋고 나쁨이 분명한 나였지만 '싫어' 게시판의 페이지가 늘어가는 동안 '좋아' 게시판의 글은 한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자신을 "싫은 것이 무척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글들을 삭제하고 게시판도 없앴지만, ‘좋아’ 게시판에 쓴 하나의 글은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짤막한 글이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쓰기 시작할 수 있고, 설령 손으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머릿속으로 쓸 수도 있으니까, 글을 쓰는 순간이 좋다는 내용이었다. 그랬다. 사춘기 이후로 한 번도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글을 쓰는 내 모습은 옛날부터 좋아해 왔다.

 작가들에게 부질없는 질투심을 품고,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깊은 슬픔에 빠지던 날들이 있었다. 한 글자도 쓰고 싶지 않던 깜깜한 날들과 하얀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던 날들을 떠올려 본다. 요즘은 메모장을 열면 일단 뭐라도 쓴다. 터무니없는 발상도 자꾸 쓰다 보면 어떻게든 정리가 된다. 용기 내어 내놓은 글도 있지만 꼭꼭 숨겨놓은 글도 있다. 어떤 글이라도 한 줄 쓰고 자면 다가오는 아침이 덜 서글프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다시 어두운 날들이 찾아오더라도 이제 나에게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내가 있다. 그런 나를 위해 계속 글을 쓰기로 한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아직도 좀 부끄럽다. 글을 쓰는 나를 좋아한다는 말은 더 오글거린다. 그래도 괜찮다. 사랑은 본래 오글거리는 거니까.



#미루글방

#봄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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