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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Feb 15. 2023

내가  베벌리는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울지는 않지


"기대어씁니다"6기

글방 과제로 쓴 글



베벌리 호프스테더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왜? 그건 내 성취가 아니야.”

“아드님이 결혼하신다고요? 며느님이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대단한 학자라던데, 엄청 기쁘시겠어요.”

“왜? 내가 그 애랑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안경을 올리며 무심하게 대답하는 베벌리 호프스테더 박사에게 나는 반해버렸다. 저명한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베벌리는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에 가끔 나오는 인물로 주인공인 레너드의 엄마이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정한 정신의 소유자로 만나는 모든 인물과의 대화를 정신 분석으로 이끌어가는 베벌리는 지나치게 훌륭한 자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별로인 자식 레너드를 늘 무시한다. 레너드는 따스한 모성애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어머니를 몹시 원망하고 미워한다. 레너드는 작은 키와 자신감 결여 같은 자기의 단점을 모두 어머니의 탓으로 돌리지만, 나는 베벌리 같은 엄마를 갖고 싶었다.


 산골 분교에 다니던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대구로 유학을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할머니가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학교에 나를 만나러 온 엄마와 점심 데이트를 하고 교실로 들어가면서 약속받았다. 엄마는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갈 때까지 있겠다고 했지만, 숨이 차도록 달려간 단칸방에는 할머니뿐이었다. 냉장고에 할머니가 좋아하는 참외를 사놓고 엄마는 시골에 내려갔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지금도 참외를 싫어한다. 2년 후 동생들도 전학을 오면서 우리 집에는 ‘엄마 대신 큰 누나(언니)’ 시대가 시작되었다. 가끔 부모님이 대구에 다녀가면,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울었다. 조금만 울어도 아빠가 혼을 냈기 때문에 억지로 눈물을 참았지만, 집에 오면 또 엉엉 울었다. 할머니도 넌덜머리가 났을 것이다. 중1이 끝나갈 무렵부터 할머니가 시골에 들어가고 엄마와 살게 되었는데, 좋으면서도 어색했다. 엄마와 같이 살게 된 후에도, 심지어 현재까지도 동생들은 중요한 일을 부모님보다 나에게 먼저 알린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베벌리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엄마 세대의 여성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른 나이에 결혼해 시집살이를 견디며 남편과 자식들을 돌보느라 어찌 사는지도 모르게 세월을 보냈다. 삶이 조금 수월해진다 싶을 무렵부터는 마음을 돌아볼 새도 없이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는 딸에게만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이 되어갔다. 엄마의 신세 한탄에 맞장구를 치다 보니 온갖 이야기를 다 들어주게 되어 언제부턴가 전화기에 ‘엄마’라고 뜨면 가슴이 쿵쿵댔다. 어쩌다 내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슬퍼했다. 어린 자식은 엄마가 끼고 살아야 하는 게 맞는데, 그깟 학교가 뭐라고…. 그러면서도 자기를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와 떨어지니 살 것 같았다고도 했다. 내가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하면 엄마는 교실로 들어가는 내가 자꾸 고개를 돌려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시골까지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고 했다. 엄마의 얼굴이 너무 슬퍼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던 순간들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는 남편과 자식들뿐’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삶은 없었다. 남편에게 화가 나고, 딸들에게 의지하고, 아들을 사랑하는 삶 이외에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자식도 남편도 결국은 남이니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가족에게서 기쁨을 찾으려 했지만, 그 기쁨은 일시적이었다. 엄마는 늘 서운해했고 나는 매번 화가 났다. 내가 특히 견디지 못하는 건 엄마의 ‘보고 싶다’라는 말이다. 카톡 창에 엄마가 쓴 ‘보고 싶다’라는 글씨를 보면 역정이 난다. 보고 싶으면 뭐? 나는 안 보고 싶다고!!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것만큼 즉각적인 반응이다. 이런 마음속 외침이 30년 전 아이의 목소리라는 걸 잘 알지만, 문제를 안다고 해서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엄마가 필요하던 시절 내 곁에 없었던 엄마를 뒤늦게 원망해도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안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갓 입대한 군인처럼 눈물이 났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고, 엄마가 불쌍해서 울었고, 내가 가엾어서 울었다. 이제는 엄마를 떠올리며 울지 않는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던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해 연민도 할 만큼 했다. 내가 엄마의 친구가 될 수 없고, 인제 와서 엄마에게 기댈 수도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가 엄마의 최애 자식이 아니라 슬퍼하는 마음도 곧 지나갈 것이다. 이제 엄마는 나의 눈물이 아니다.


 내가 베벌리에게 반해버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자식과 남편의 삶 따위가 나의 직업과 학문적 관심사에 우선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엄마. 구태의연한 애정 표현 나부랭이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 엄마. 나는 우리 엄마의 흐물흐물한 사랑보다 강철 같은 베벌리의 마음에 이끌렸다. 냉정하면 어떠냐, 저만큼 강인한 엄마라면 자식이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을 텐데. 나는 베벌리처럼 강한 엄마가 되리라! 하지만 레너드의 생각은 물론 나와 달랐다. 레너드도 나처럼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부에서 레너드는 드디어 엄마를 용서한다. 오, 어머니! 하며 눈물을 흘리는 식의 용서와 화해가 아니다. 아들의 간청에도 냉정하기만 한 베벌리에게 레너드는 말한다.

“그거 아세요? 저 이제 엄마를 용서할게요. 저의 용서가 엄마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 잘 알지만, 그래도 용서할게요.”

짧은 침묵 후에 베벌리는 대답한다.

“고맙다. 너의 용서는 나에게도 아주 의미가 있단다.”


 60대의 엄마와 40대의 나. 우리에게 좀 더 솔직하고 편한 사이가 될 시간이 남아있다고 믿어본다. 우리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모녀 사이지만 적당한 거리를 찾아가고 있는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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