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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Oct 26. 2023

중2 담임 이야기(1)

부반장이 되고 싶어요


‘부반장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학급 임원처럼 부담스러운 직책은 절대 맡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있고, 반대로 꼭 반장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나처럼 ‘반장은 절대 싫지만, 부반장은 꼭 되고 싶은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부반장을 자주 한 경력(?)을 살려보고 싶었지만, 중1 때는 나서지 못했다. 아무도 전학하지 않는 1학년 끄트머리 2월에 굳이 전학해서, 잠시 따돌림을 당한 시절을 지나 새로운 2학년 반에 올라갔을 때 바닥에 남은 용기를 쥐어짜서 부반장에 도전했다.


선생님은 반장 후보 추천을 받고 부반장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키 순서에 맞게 맨 앞줄에 앉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출석부에서 내 이름을 확인한 선생님의 눈빛이 좀 흔들렸고, 다음 순간 나는 교무실 선생님 자리 옆에 서 있었다. “적극적으로 부반장을 하겠다고 한 건 좋아. 그런데… 성적순으로 반장 부반장을 뽑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적이 좋아야 아이들이 반장으로 뽑아주고…그러니까….”

그저께 카페에서

어안이 벙벙했다. 새 학기 직전 2월, 반 배정이 끝난 다음에 3반에 배정된 전학생인 나는, 그 표시로 출석부 맨 아래 칸에 이름이 쓰여 있었다. 출석부에 쓰인 순서가 1학년 시험 성적표 등수대로였다. 요즘도 반 배정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교 1등이 1반, 2등이 2반 하는 식으로 10반까지 성적에 따라 아이들의 이름을 맞추어 넣다 보면, 자연히 임시출석부는 등수대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49번 칸에 이름이 쓰인 나는 시험성적이 반에서 49등, 전교에서도 꼴찌에 가까운 아이로 보인 것이다.


부반장이 되겠다고 나설 정도였으면 “저 성적 괜찮은데요? 평균이 90점인데? 전학을 와서 마지막에 쓰인 건데요?”라고 정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곤혹스러워하는 선생님의 말투에 당황해서 그저 “네….”하고 말았다. 속으로 ‘이 학교는 학급 임원이 되려면 성적이 정말 정말 좋아야 하는 건가? 전교 몇 등 안에 들어야만 할 수 있는 건가?’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묻지 못했다. 반에서 꼴찌인 주제에 부반장이 되겠다고 나대는 아이로 보였을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선생님이 내 성적을 제대로 알고 나면 이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싶었다. 마흔이 넘어 이 이야기를 쓰게 될 줄 알았다면, 역시 그날 당당하게 물어볼 걸 그랬다.

열심!

"부반장 후보가 될 수 없는 이유" 사건 이후 중간고사에서 내 시험성적이 사실은 제법 우수하다는 정확한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선생님의 사과를 기다렸다. 물론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서 '오해해서 미안했다.'라고 말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사과하는 시대도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더욱 그런 어른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나를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나대기만 하는 아이"로 보지 않고 "제법 똘똘한 아이"로 봐주기를 바랐다. 공부를 잘하든 말든 나는 선생님에게 귀염 받기는 글러 먹었던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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