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어느 날, 교무실에 불려 갔더니 장학금 신청 서류를 보여주었다. 어디에서 주는 건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우리 집 형편 정도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다정하게 들렸는데, 그 다정함이 가난한 학생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나온 것이겠거니 지레짐작하니 곧 비참해졌다. 내가 조금만 더 철 든 아이였더라면 당당하게 장학금을 받았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문항을 읽어주면 내가 네, 아니요'를 답하는 방식으로 서류를 채워갔다. 아버지가 농업에 종사하시는지, 엄마는 출근하시는지, 아버지는 시골에 살고 엄마는 같이 사는지, 지금 엄마와 사는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따위를 물었다. 그런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벌게졌다. 제 할 일 바쁜 선생님들이 나에게 무슨 관심이나 가졌겠냐마는 동냥 나온 어린 거지 취급을 당하는 기분마저 들어 어서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 집에 차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작년 겨울에 새로 산 아빠의 트럭이 있으니 그렇다고 했다. 선생님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질문은 거기서 끝났고, 나는 교실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바로 나에게 질문했다. 학교에서 장학금 준다고 하지 않았냐고, 왜 안 된다고 하냐고 물었다. “아빠 차 있다고 하니까 안 된다던데?” 내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엄마는 대뜸 화를 냈다. 분명히 나온다고 한 장학금인데 왜 안 되느냐고, 트럭 한 대 있다고 안 나오는 건 아니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기껏 중학교 학비가 얼마라고 그걸 받으려고 안달복달인가 싶어 나도 화가 나는 참이었다. 내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는지는 엄마가 알 바 아니었고, 그깟 장학금이 얼마인지는 내 알 바 아니었다. 그 장학금을 나에게 꼭 줄지 말지는 아마도 선생님 알 바 아니었겠지. 그 후에 엄마가 따로 학교에 연락했는지는 모른다. 몇 년 후 근처 남중으로 부임한 이 선생님이 남동생의 담임이 되었는데, 그때 반장이 된 남동생은 아마 장학금을 받았던 것 같다. 선생님과 엄마는 달라진 학교에서 다시 만난 걸 반가워했다. 나와는 달리 인사성이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남동생은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강강약약으로 정의감에 불타고, 어른들께 예의가 바른 남동생은 학교생활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회성을 발휘한 것인지, 엄마는 담임과 통화하거나 학교에 다녀온 날 눈에 띄게 기뻐했다. 한 시간 내내 남동생 칭찬 이야기를 들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나의 담임이 남동생의 담임이 된 건 몇 년 후의 일이다. 중2 담임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쓰고 잊어버리고 싶다.
여름방학 개학식 날이었다. 공지 사항을 전달하고, 하나 마나 한 형식적인 당부를 하던 선생님의 어조가 살짝 바뀌었다. 눈썹이 찌푸려져 곧 듣기 언짢은 잔소리가 나올 타이밍이다 싶었다.
"내가 정말 듣기 싫은 말이 있다.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거.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몰라요,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걸 하나하나 다 가르쳐줘야 하나? 공부는 스스로 하든지, 그런 건 집에서 부모님이 가르쳐줘야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우리 반 아이들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물었을 리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질문을 받아줄 선생님도 아니었지만, 영어 공부를 잘하고 싶은 아이라면 학원 선생님에게 물어봤겠지. 맨 앞에 앉은 나는 선생님을 빤히 보다가 날카로운 눈빛에 고개를 숙였다.
며칠 전 아빠가 흠잡을 데 없는 나의 1학기 성적표에 쓰던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가 멀리 있다는 핑계로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아직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선생님의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아빠는 나의 우수한 성적에 어울리는 반듯한 글씨로 부모님 말씀 칸을 채웠다. 대충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되지, 길게도 쓴다 싶어 여러 번 읽었기에 잊히지 않았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나 말고 다른 애들도 성적표에 그렇게 써서 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공부 방법을 모르니 잘 알려달라"라는 학부모 의견란을 질리도록 읽은 나머지, 역정이 나서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부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 말이 나를 저격하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종례 시간에 몇 번이나 눈이 마주치기도 했고, 선생님은 늘 나를 좀 거슬려한다고 느꼈으니까.
그 담임이 남동생의 담임이 된 건 어느 면에서는 괜찮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담임이 혹시나 나에게 한 조각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잘 풀 수 있었을 거고, 장학금 문제로 마음이 상했을 우리 부모님의 기분도 풀렸을 테니까. 엄마가 남동생 담임을 만나고 와서 즐거워할 때마다 흥!하며 비웃던 나는 기어코 이런 좀스러운 글을 쓴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괜히 찔려서 우리 엄마한테 좋은 말만 했지?’라고 여전히 비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