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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Dec 04. 2023

젊은 소방관의 슬픔(2)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45)

(사진 - KBS 포토뉴스)


며칠 전, 제주도에선 또 한 명의 젊은 소방관이 불을 끄다 순직했다는 가슴 아픈 뉴스가 들려왔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난 창고 화재로 불을 끄던 소방관이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에 깔려 순직했다는 내용이었다.


https://youtu.be/bNE9EJqmmwM?si=vexdIORxRE9DkC2s


그런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뉴스를 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응? 구급대원이라고?"


그랬다!, 불을 끄다 순직한 고. 임성철 소방관은 구급대원이었던 것이다!


뉴스를 살펴보니 그는 대학에서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하고 구급대원으로 특채된 소방 구급대원이었다. 거기다 2019년 경남에서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지만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어 2021년 다시 제주소방에 시험을 쳐서

합격하고  표선 119 안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열정적인 소방공무원이었던 것이다.


이 분을 보니 지난 3월에 내가 여기 올렸던 '젊은 소방관의 슬픔'에서 집안에 있는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불이 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순직했던 고. 성공일 소방관이 생각났다. 어쩌면 이렇게 젊고 사명감 있는 대원들이 소방에만 들어오면 죽어나가야 하는지...


https://brunch.co.kr/@muyal/106


내가 뉴스를 보고 그렇게 놀란 것은 보통 불이 나면 구급대원은 화재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로 화재 현장에서 부상당한 사람이 있으면 응급처치를 하면서 병원에 이송하는 것이 구급대원의 임무다. 그런데 그분은 왜 그렇게 불이 난 곳 안에까지 들어가 화재 진압을 하고 있었을까? 고. 임성철 소방관의 순직 역시 만성적인 소방관들의 인력부족이 부른 참사다. 화재가 나면 보통 관할 119 안전센터의 펌프차, 탱크차, 구급차가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한다. 펌프차는 불이 난 곳에 호스를 끌고 가 불을 끄는 주력 소방차로, 운전하는 대원을 비롯해 4~5명 정도가 탑승한다. 그리고 탱크차는 펌프차에 물을 공급해 주는 소방차로 보통 운전대원 1명이 탑승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부상자를 응급처치 해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급차엔 3명의 구급대원이 타고 있다.


(일반적인 119 안전센터의 모습, 좌측에서부터 탱크차, 펌프차, 구급차가 서 있다.- 아시아경제 펌)


일단 화재가 나면 이렇게 차량 3대가 출동하지만 보통 구급차가 가장 먼저 도착한다. 작고 빠르기 때문이다.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면 구급대원들은 현장상황을 먼저 무전해 주고 바깥에 있는 요구조자가 있으면 구조한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진 않는다. 왜냐하면 구급대원들은 구급업무를 주로 하기 위해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갖춘 사람들로 특별 채용되었고 구급활동에 따른 훈련을 주로 받으며 따라서 구급차에는 화재 진압요원들이 착용하는 공기호흡기라든지, 방화복, 소방헬멧등은 싣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현장의 상황을 무전으로 상황실에 먼저 알리고 그다음에 오는 펌프차에 실린 방화복과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화재진화 대원들의 화재진압을 돕는다. 그런데 도시에 있는 화재현장에서는 타 관할 소방차가 금방 오기 때문에 구급대원들이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찰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앞서 고. 성공일 소방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농촌지역에 있는 화재 현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가 아닌 농촌지역의 안전센터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 대도시의 후착대는 5~10분 정도면 오지만 그런 농촌지역에서는 후착대를 30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불길은 점점 거세어져서 바로 옆에 있는 감귤밭까지 넘어오려고 한다. 이럴 땐 구급대원이고 화재 진압대원이고 따질 여유가 없다. 불을 끄는 진압대원은 기껏해야 2~3명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화세가 강한 화재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모두가 나서서 힘을 합쳐 불이 감귤밭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임 소방교, 여기 빨리 호스 좀 당겨!"


팀장이나 방수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저 구급대원인데요?"


라고 말할 소방관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나 임 소방교처럼 매사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했던 열정적인 젊은 소방관이라면 더 그렇다. 아마도 그는 자기가 먼저 뛰어가 호스를 당겼을 것이다. 그때


"우르르~ 쾅!"


하며 창고 건물의 콘크리트 처마가 무너져 내렸다. 안타깝게도 젊은 소방관은 그렇게 잔해에 깔린 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센터마다 '현장안전점검관'이라는 직책이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위험한 곳이 있다면 알려주는 역할이다. 보통 팀장이나 방수장(선임 화재진압대원)이 그 역할을 겸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원들도 화재 현장에 도착하면 현장상황을 무전해 주거나 소방호스를 들고 불이 난 곳으로 가서 불을 꺼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와 동시에 현장이 안전한가, 건물을 무너질 염려가 없나, 혹시 폭발할 가능성은 없나, 살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임무인 불을 끄거나 무전을 하기도 바쁜데 이 젊은 소방관의 안전을 살필 여유는 더욱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평소 구급업무만 하던 이 젊은 구급대원은 화재 현장이 낯설었을 것이다. 소방복이 어색하고 공기호흡기도 무겁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대원들이 불길이 감귤밭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저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혼자 모른 척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차고 힘겹게 호스를 당긴다. 후착 분대가 오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이 감귤밭으로 넘어가면 자칫 대형 화재가 될 수도 있다. 옆 건물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 뜨겁긴 하지만 호스를 당기는 일은 멈출 순 없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나긴 하는데 이 건물이 무너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높은 온도와 강한 방수압력에 노출된, 낡고 오래된 콘크리트 창고 건물이 맥없이 무너진다. 젊은 소방관의 뜨거웠던 삶도 같이 무너져 내린다. 더 이상 화재현장에서 젊은 소방관의 안타까운 순직이 없기를 바라던 우리들의 바램도 같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뜨거운 화재현장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화재 진압을 하다 순직하신 고. 임성철 구급대원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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