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79)
(사진 - 네이버 블로그 'achive' 펌)
지난주 수요일엔 홀몸 어르신 관련 출동이 두건이나 있었다. 한 건은 낮에, 그리고 다른 한 건은 밤에 있었다. 낮에 있었던 한 건은 문개방 구조 출동이었다. 이층에 사시는 노인분이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문이 잠겨 있고 인기척이 나지 않는다는 아래층 사람의 신고였다.
항상 그렇듯이 이렇게 되면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문을 잠가 놓고 이웃에 마실(?)을 가셨을 수도 있고, 문을 잠가 놓고 꿈나라로 마실을 가셨을 수도 있고, 문을 잠가 놓고 영영 저세상(?)으로 마실 가신 걸 수도 있다. 우리는 문개방 기구를 지참하고 현장에 도착했다. 핸드폰 벨이 안에서 울리는 것으로 봐서 안에 그분이 안에 계실 확률은 50% 이상이었다. 현장에 같이 도착한 경찰과 이 문을 파괴해서 개방할지를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구급대원의 폰으로 걸려온 전화로 그 조카 되시는 분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그분이 현관문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확인 불가였다. 그런데 문을 개방하려면 일단 그분의 동의가 필요하긴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제쯤 도착하냐고 물으니 1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10분이면 애매한 시간이었다. 혹시라도 저 안에 있는 홀몸 어르신이 응급 상황이라면 10분은 골든 타임을 넘기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만약 일단 문을 파괴해서 개방하고 나서 그 어르신이 없다면 곧 오는 조카로부터 원망을 듣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안에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문을 파괴하면 어떡하냐고...
그렇게 우리는 현관문을 파괴해서 개방할지 말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문이 개방됐다. 구조대원 한 사람이 이웃집 담장에서 할머니 집 창문으로 건너가 그 창문을 개방하고 현관문을 연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땐 안에 아무도 없었다. 방문 앞에 놓인 핸드폰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볕이 좋은 날을 골라 핸드폰을 사뿐히? 집안에 두고 어디론가 마실을 가신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그나마 할머니가 안계서서 다행(?)이라면 돌아섰다. 그때까지도 조카란 사람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문을 파괴하지 않은 것은 두 번째 다행이었다.
두 번째 사건은 자정이 다 됐을 무렵이었다. 단독 경보형 감지기 오동작으로 시끄럽게 울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신고였다. 단독 경보형 감지기란 화재가 나면 그 연기나 열기를 감지해서 경보를 울림으로서 그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게 만든 소방시설이다. 하지만 주택 내에서 일어나는 취사나 담배연기등에도 오동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신고가 가끔 들어오곤 한다.
소방차를 타고 찾아간 신고 장소는 차가 들어갈 수도 없는 골목길 산동네였다. 한 15분쯤 걸어 도착하니 몇몇 분의 아주머니들이 나와 계셨다. 할머니가 홀로 사시는 집인데 경보기가 계속 울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안을 들어가니 천장에 비닐을 치고 압정으로 박아놓은 것이 보였다. 천장에서 계속 물이 새서 그렇게 해 놓았다고 했다. 압정을 뽑아내고 비닐을 걷어내자 문제의(?) 단독 경보형 감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물이 새는 천장에 경보기를 달아놓았으니 오동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게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는 가지고 간 드라이버로 경보기를 떼고 나서 아주머니들에게 말했다.
"이 상태에서 경보기를 다시 달 순 없습니다, 먼저 천장에서 나오는 물을 모두 잡아야 해요."
아주머니들은 그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우리도 모르는데 잘못하다간 물이 어디서 새는지까지 찾아야 할 것 같아서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일단 방수 관련 기술자를 불러서 조치를 취하시고 방수가 다 되고 나면 다시 달아드리러 오겠습니다."
하고 돌아섰다. 그분들은 고생하셨다며 우리에게 요구르트 세병을 건넸다. 우린 그걸 먹으면서 골목길을 내려갔다.
"하, 저거 잡기 어려울 텐데..."
요구르트를 마시며 김주임이 말했다.
"그냥 주방 천장 말고 다른방 천장에라도 달아드릴 걸 그랬나?"
팀장님 역시 요구르트를 마시며 말했다.
"그럴 걸 그랬네요, 다음 근무 때 시간 나면 와서 달아드리죠..."
나 역시 요구르트를 쪽쪽 빨며 말했다.
우리는 달빛 어스름한 골목길을 랜턴을 비춰가며 내려왔다. 소방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근무날, 우리는 오전 중에 할머니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의 딸이란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아, 어머니요?, 여기 계속 계실 수가 없어 다른 집으로 옮기기로 했어요, 일단 천장 수리 다 될 때까지만이라도요,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순 없지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그 집으로 오시면 전화 주세요, 천장이 수리되면 저희가 갈 테니까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언제 수리가 될지, 그래서 경보기를 다시 달아주러 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이번 겨울은 나야 될 것이고, 내년, 후 내년, 내가 이 센터를 떠나고 나서 전화가 올 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영 안 오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경보기를 계속 달아주러 다닐 것이고 그게 오동작하면 또 그걸 조치하러 출동할 것이다, 그러다가 다행히 그것이 화재를 감지하고 경보를 울려서 그 안에 있는 홀몸 어르신을 살릴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우리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