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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May 21. 2020

비상소집과 삼겹살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 (3)

    3교대로 돌아가는 근무, 비번과 당번, 휴일 근무... 이런 것들이 있어 소방관의 일과는 일반인과는 많이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쉴 때 쉬지 못하고 일하는 날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소방관이 되면 사회, 학교 친구들은 잘 만나지 못해서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소방관들끼리만 어울리게 된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비상소집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화재가 나거나 관내 -보통 소방서 관할 지역으로 하나의 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에 큰 사고가 일어나면  비상소집이 걸리게 된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 뭘 하고 있더라도 그 비상소집에 응해야 하는 것이다. 규정에는 한두 시간 내에 응소 -비상소집에 응함- 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열일 제쳐두고 최대한 빨리 화재가 난 현장으로 가야 한다. 불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나 보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참고로 애들이 엄마 입맛을 닮아 해산물은 잘 먹지 않고 육고기를 즐긴다. 그중에서도 돼지고기를 제일 좋아한다.- 일요일이었던 그 날 저녁도 거실에다 신문지를 깔아놓고 부르스터 위에다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집에서 먹으면 냄새가 좀 배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맘껏 먹을 수 있어 우리 가족은 가끔씩 집에서 구워 먹곤 했다.-


(집에서 구운 삼겹살-네이버 블로그 펌)

  

  고기 한 점을 쌈장에 찍어 상추에 얹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소방서였다. 관내 공장에서 대형화재가 났으니 빨리 응소하라는 것이었다. 심각하게 전화를 끊고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니 애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때 소방관 마누라 십 년 차였던 집사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비상 걸렸어?"


    난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몇 분 전만 하더라도 고길 구워 먹는다고 좋아했던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댓 살 정도였던 둘째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아빠와 고길 구워 먹으려 했었는데 아빠가 불 끄러 가야 한다는 걸 눈치챘나 보다. 난 둘째를 안아주었다.


    "아빠 금방 올게."


    둘째는 내 품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다치지 말고 빨리 와야 해!"


    화재현장에서 내가 손을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둘째는 내가 또 다칠까 봐 겁에 질린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아빠 이 고기 식기 전에 빨리 불 끄고 올게, 기다려~"


    나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처럼 아이와 눈을 맞추며 호기롭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지켜지지 않을 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와 첫째를 애써 외면하고 집을 나섰다.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3시였다. 그래도 화세가 초반에 잡혀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며칠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화재현장에  있을 뻔했다. 어차피 아침이 되면 다시 출근을 해야 하지만 잠시라도 집에서 눈을 붙이고 싶어 집으로 다. 애들은 벌써 자기네 방에서 곯아떨어져 있었고 와이프는 걱정이 되어서 아직 못 잤는지 충혈된 눈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채윤이가 아빠 올 때까지 고기 안 먹겠다고 해서 달래느라 고생 좀 했어."


    아내는 충혈된 눈을 비비며 웃으며 말했다. 나도 잠든 애들을 보며 씩 웃었다. 둘째에게 거짓말한 죄로 오늘 저녁엔 퇴근하면서 삼겹살을 좀 더 사 와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의 쌔근거리는 숨소리 사이로 새벽이 밝아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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