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방관아빠 무스 Jun 18. 2021

쿠팡화재 구조대장님의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5)

(사진출처-연합뉴스)


   비가 오는 오전, 어젯밤 뉴스를 보면서 밤새도록 뒤척인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비번인 나는 지금 여유롭게 글을 쓰지만 어제 화재현장에서 고립된 소방관은 칠흑같은 연기와 화마속에서 어떻게 밤을 보냈을까, 그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를 생각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불이 난 지 28시간이 지났지만 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태우고 있다. 새벽에 비가 내렸지만 뉴스에 나오는 화재현장에서는 연기와 불길이 쉴 새 없이 물류창고 벽면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 속에서 숯검댕이가 된 방화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는 소방관들... 저들의 심정을 나는 알고 있다. 화재가 시작된 지 28시간동안 불을 못끄고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동료를 저 속에다 남겨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지금이라도 당장 맨몸으로라도 안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구조대장을 안고 나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연기는 그 길을 가로막고 화마에 기울어진 건물은 그들의 발길을 잡는다. 그리고 하늘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물만 흘리고 있다.

 

   모든 화재 출동이 그렇듯이 어제 새벽에 걸린 출동에서도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 화재가 수월하게 꺼지길 바랬을 것이다. 화점까지 신속하게 호스를 깔고 정확하게 화점에 방수해서 화재를 진압하고 무사히 센터로 복귀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상황요원의 음성은 다급했고 소방차 안에서 공기호흡기 면체의 끈을 단단하게 졸라매었을 것이다. 막상 화재 현장에 도착해 보니 불은 벌써 커다란 물류창고를 집어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65밀리 대형 방수포가 소용없을 정도로 불은 이미 알라딘의 마법램프에서 나오는 지니처럼 커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화세를 뚫고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가며 소방호스를 펼쳐야 했을 것이다. 검은 연기가 눈을 가리고 뛰는 심장박동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자신의 귓전을 때려도 그 화마를 향해 물대포를 쏘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대원들은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찾아 건물안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최초 발화가 시작된 지하 2층으로  위험을 무릎쓰고 내려갔을 것이다.  검은 연기 안으로 비쳐드는 한줄기 랜턴빛에 의지해서 발을 옮겼을 것이다. 점점 줄어드는 공기호흡기 잔량을 확인하며 희미한 사람의 흔적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반에 올려둔 가연물의 존재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들이 쏟아지면서 잦아들었던 화마는 다시 되살아났고 다섯명 구조대원들을 덮쳤을 것이다. 삽시간에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고 그들은 현장을 탈출하라는 무전을 받고 동료들과 함께 현장을 빠져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탈출하고 나서야 자신들의 구조대장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다시 지하 2층으로 진입하고 싶지만 건물 붕괴 우려로 인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소방관들이 쓰는 공기호흡기는 50분용이지만 격렬한 화재 현장에서는 많은 산소가 소모되기 때문에 30분 정도밖에 쓸 수 없다. 30분이 지나면 용기를 교체하기 위해 화재현장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만약 동료들을 잃어버려 고립되어 나가는 방향도 알 수 없을 때는 현장으로 진입할 때 바닥에 깔고 들어온 소방호스를 더듬어 진입로를 찾아야 한다. 호스를 따라 반대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호스도 놓쳤을 경우에는 꼼짝없이 벽을 더듬으며 출구를 찾아야 한다. 한쪽 벽을 짚으며 계속 따라가다가 우연히 출구를 찾으면 그 곳으로 나오는 것이다. 공기가 다 떨어지기 전에 출구를 찾는다면 다행이지만 출구를 찾기전에 공기가 다 떨어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것을 신께 맡기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방관의 기도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력한 화염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을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온갖 비극적인 결말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구조대장님이 무사귀환 할 수 있기를 전국의 소방관들은 마음속으로 빌었을 것이다. 어제밤의 나처럼.


   다시 한번 이천물류창고 화재에 출동하신 김 소방경님의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실종 48시간만에 유해로 돌아온 고. 김동식 구조대장에게 대원들이 마지막 경례를 하고 있다-(사진:이천시 제공))


이전 04화 선박화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